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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물의 헌신(고린도후서 8:5-9),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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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시간의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재물의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신자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단계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람교회란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란 뜻입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여기서 형제들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마게도냐교회들이란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마게도냐 성도들이 헌금을 드려서 예루살렘 교회에 나누었던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입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여기서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이 무엇일까요? 마게도냐 성도들이 어려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하여 헌금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게도냐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나누는 삶 그것이 곧 은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같이 따라 하시겠습니다. ‘나누는 삶은 은혜입니다.’그리스도인의 삶은 도와주는 삶이 아니라 나누는삶입니다.

 

 나누는 삶이 어떻게 은혜가 될 수 있을까요?

 

나눔을 받는 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나누는 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넘치는 은헤를 나누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나누는 삶은 양쪽 다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의 특징은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부요를 가지신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나눔은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기 위해서 자신은 가난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눔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것으로 나누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나눔을 위해서 생활의 일부분을 아예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눔을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나누었던 사랑의 손길은 단순한 동정적인 행위나 의무나 책임감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단순히 도와주는 구제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도와준다는 표현보다는 나눔의 기회를 갖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의 삶은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어떤 부분을 단순히 떼어서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선물의 가치는 그 선물의 가격보다는 그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과 같습니다.

 

나눔의 과정도 단순한 책임감이나 입장 때문이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베푸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소원을 주신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나눔은 단순히 주는 쪽과 받는 쪽의 관계가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삼각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또한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남에게 베푸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저하지 않고 베푸는 삶입니다. 베플고도 기대하지 않는 삶입니다. 나누고도 아쉬움이 없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이 나누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이사야 586-7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냐.”

 

즉 그리스도인 나누어야 할 대상은 가장 원초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즉 질병과 가난과 고독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고독한 사람, 오랜 시간 투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나누는 삶이 필요합니다. 괴로워하는 자들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쇠약한 사람들, 가슴이 숱한 사연으로 맺혀 있는 사람들, 영적으로 눌려 있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재물 사용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아름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8-19절 말씀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잘 사용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흔들어 넘치도록 채우리라.”그러나 우리는 흔들어 넘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나누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거나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무슨 상급이나 축복을 돌려받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풍성하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마땅히 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부가적으로 주시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물 그 자체 보다는 그 재물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재물을 잘 사용하면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사람을 교육시키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유익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 찾아가서 베풀어야 할까요?

 

누가복음 1412-14절 말씀입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여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이것은 식구나 친척들이나 친구들과 성도들과 식사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아무도 챙겨 주지 못하고 도저히 갚은 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나눔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최고의 것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조건이나 이유가 없이는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생명을 주셨고, 사랑을 주셨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아무 조건 없이 베풀고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받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목적은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나눔을 실천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마태복음 2531-46절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의 부류에 속한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잘 한 것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에 염소의 부류에 속한 사람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잘못함으로써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머태복음 2542-43절 말씀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주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시니.”

 

그리스도인은 가능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잘해야 합니다. 그것도 특별히 잘하는 것보다 아주 일상적인 삶 가운데 진정한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구제할 때에 가능한 알려지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를 찾아 가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여건을 갖춘 곳에 찾아가서 도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외되고 손길이 닿지 않는 그런 곳에 찾아가서 나누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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