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복음의 주자로서 쓰임을 받은 배후에는 관계를 통한 헌신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나바입니다.
본문 26절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였지만 다들 경계하여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절에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2절에 보면 믿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심지어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에게 찾아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고 부탁하였을 때 아나니아 역시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3-14절에 보면 사울이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친 인물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에게 받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변화되었다고 해도 쉽게 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본문 26절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사울이 예루살렘에 찾아간 것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에 3년이 지났을 때였고 15일 동안 예루살렘에 체류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8절입니다. “그 후 삼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체험한 후에 전적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시간을 3년 동안 가졌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6-17절에 보면 사울은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제자들을 찾아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복음 사역을 위해서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의 체험은 그의 사역의 준비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복음 사역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준비는 사람들의 재정적인 도움이나 인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인도하심입니다. 사울이 3년 만에 게바 즉 베드로를 만나려고 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였습니다(갈 1:19).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사울에 대한 경계심이 그만큼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울의 이러한 냉대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사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체험하였는지,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그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본문 27절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서로 불신하던 관계에서 신뢰하는 관계로 바뀌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신앙세계에서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선입견이 좀처럼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제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킨다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나바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사울의 진정한 변화를 알려주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을만한 평신도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에게 바나바(권위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라 하니.”
바나바는 이러한 위치에서 사울을 제자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복음 사역을 위해서 관계를 통한 놀라운 헌신을 하였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새로운 초석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러한 바나바의 도움은 사울의 복음사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본문 28절입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복음 사역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역을 위한 나눔과 격려와 도전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관계를 통한 헌신은 사선을 넘기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본문 29-30절입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만약에 사울에게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없었더라면 복음이 확산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바나바의 관계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마다 복음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울 한 사람이 변화되고, 바나바의 중간 역할을 통해 교회 부흥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위한 관계의 헌신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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