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회복탄력성"이란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입니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합니다. 떨어져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자기 백성들을 심판하시지만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황폐화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한다고 시위대 뜰에 갇혀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는데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회복의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주셨습니다.
1.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셨습니나. 어떤 문제가 생길 때에 우리는 해결책을 찾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주는 압박감으로 인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본문 2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시며, 만드시며 성취하신다는 것일까요? 본문 7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역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주간에 [파친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목사가 이삭에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단순히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감정을 알아야 해.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실 게 분명하니까.우리는 주님의 고뇌를 이해해야 하지.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으시네. 주님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으시지. 그걸 아는 게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는 거야. 우리가 홀로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게 말일세."
우리가 어렵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됩니다.
2. 심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범죄할 때에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심판하시고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허락하셨다면 반드시 회복도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는 채널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하시고 이어서 그분께 간절히 부르짖게 하십니다. 본문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성취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간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촉구합니다.'부르짖으라'는 히브리어 '카라'는 '절규하다'는 의미로서, 심한 갈증 속에서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삼손의 모습이나 자식의 잉태를 위해 절규하던 한나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삿 15:18;삼상 1:10-16).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어직 하나님께만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간절히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채널을 통해서 그분이 행하신 것을 간증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전에 어떤 성도님은 문제가 생기면 기도를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면 얼마 후에 응답받았다고 기뻐하시면서 제게 연락을 주십니다. 그러구 나서 얼마후에 표정이 시무룩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건가요? 물어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지, 우연히 일어난 일인지 긴가민가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문제가 생길 때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시켜 주는 통로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너무 똑 같은 경우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헷갈리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대부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셔프라이즈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는 소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최대의 위기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하나님께 매달리는 순간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 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크고 놀라운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기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미리 열어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 자체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시켜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주변국가들을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4, 5절에 의하면 남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가야 했습니다. 이는 남유다의 악행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워 예루살렘을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악행이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32장 29, 30절입니다. “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는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남 유다의 악행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격노하게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된 것은 남 유다가 죄를 지은 까닭이요 폐허가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은 주의 뜻이 아니지만 그 심판을 통해 회개하여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사야 19장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예레미야 33장 6절입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짓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나타낼 것이라.” 그러나” 반전입니다. 반전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하나님이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번만 생각해 주시면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치유하심이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사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과 진실함이 풍성해지면 정말 좋겠습니다.
남유다의 회복은 7, 8절에 의하면 바벨론의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의 죄를 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열방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복을 듣게 하시고 두려워 떨게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메시야 왕국의 도래할 것을 예고합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방에서 일어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회복은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나라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적인 어려운 상황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함으로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됩니다(4절). 유다 백성들은 자기 집과 왕궁을 헐어서라도 포위 공격하는 갈대아 군대를 막아 보고자 애쓰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서 얼굴을 가리시고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5절).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고 돌보아 주시지 않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돌이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실 때 우리는 새로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6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고쳐서 낫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우리는 먼저 영적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평강과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용서해 주십니다(8절).
이러한 회복과 치유의 역사는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될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열방이 이러한 회복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복과 평안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며 떨 것입니다.
신자는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복과 평안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를 보고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본문 10-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예루살렘 회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바벨론 침략이후 황폐한 예루살렘 거리들이 다시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기쁨은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목소리로,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목소리로 나타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유다의 성읍들은 평화와 번영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은 다시 양 무리에게 안전한 초목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에서 해방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최상의 기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12-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을 만큼 황폐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 목자가 살 곳을 주시고, 양떼들이 누울 초장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영적 축복을 받으면 이어서 물질적 축복도 받게 됩니다(마 6:33). 목자가 양떼들을 계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이 안정되고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통치아 회복에 대한 약속이 14-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들이 메시야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 곧 메시야가 탄생하시고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구원과 안전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영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가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이 언약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왕권을 지속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다윗왕권의 회복은 다윗계열에서 등장하게 될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어떠한 경우에도 취소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더구나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의 수효가 많아질 것입니다(19-26절). 메시야는 이전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 신실한 언약을 이행합니다.
둘째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받게 될 예루살렘 성이 장래에 재건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은 이전과 같이 불법과 우상숭배가 자행되는 중심지가 아니라 메시야의 진정한 통치를 받는 영적인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전 이스라엘은 더욱 완전한 구원의 상태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 다윗 왕가의 대는 표면적으로 완전히 끊어졌으나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직, 제사장직이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취이며 율법의 완성입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열왕기상 8:1-11), 김덕선 목사 (1) | 2026.04.14 |
|---|---|
|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예레미야 42:3-6), 김덕선 목사 (0) | 2026.04.13 |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예레미야 17:5-8), 김덕선 목사 (0) | 2026.04.13 |
| 생각의 결과 (예레미야 6:16-19), 김덕선 목사 (1) | 2026.04.13 |
| 두 가지 악은 무엇인가?(예레미야 2:13), 김덕선 목사 (0) | 2026.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