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에는 설교가 끝나야 밥맛이 돌아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큽니다. 생각지 않은 찬양을 떠오르게 하시고 말씀이 맴돌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일에 탐욕하지 않으며, 나의 나됨 버리고 오직 주님 내 안에 살아있는 오늘이 되게 하옵소서.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으며 부유해도 오만하지 않으며 모두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억울한 일 당해도 원통하지 않으며 소중한 것 상실해도 절망하지 않으며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때로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곤 합니다. 성공의 높이도 필요하지만 고난의 깊이가 중요합니다. 복을 많이 받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인가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얼핏 보면 저주와 축복의 비결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떤 사람인가?를 강조합니다. 본문 5절 하반절에 보면 “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7절 하반절에 보면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오늘 본문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시켜 줍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남 유다 백성들은 잘못된 그 사람입니다. 남 유다의 죄악은 금강석 철필로 기록되어서 도저히 지울 수 없을 만큼 마음판에 새겨져 있습니다(1절). 그들의 죄가 제단 뿔에 새겨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단 뿔은 본래 죄인에게 사죄를 선언합니다(출 27:2, 29:12). 근데 제단 뿔이 사람을 정죄하며 심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9:14). 또한 우상의 제단에서 죄를 지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는 그들의 자녀들까지도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에 절할 정도로 우상숭배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육신으로 자신의 힘을 삼아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심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남 유다는 하나님보다 동맹국인 앗수르와 애굽을 더 의지했습니다. 남 유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우상숭배에 마음이 더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을 포기한 적이 없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사람이나 재물이나 명예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상이 되기 쉬운데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항상 우상 앞에는 "자기를 위하여"라는 표현이 들어갑니다(사 2:20). 그것을 얻으려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얻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말씀이 결론이 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나 입장이나 유익을 위한 결론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대상이 못됩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사람에게 어처구니없이 배신을 당하거나, 아무 염려 없이 꼭 이루어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일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육신에 보이는 것을 힘으로 삼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람의 재물이나 능력이나 권력을 믿고 마음에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신자는 하나님보다 사람이나 제도나 재물을 더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들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을 보지 못합니다.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아사 아무 쓸모도 없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면서 아무런 소망이나 낙이 없습니다. 광야 건조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처럼 사는 게 너무 쓸쓸하고 위로와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믿고 기대를 거는 사람은 좌절감을 맛보고 그들의 모든 희망은 헛되게 끝이 납니다.
신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을 의지하면 왜 안될까요?
남 유다는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앗수르의 위협을 받을 때 애굽을 의지합니다. 이사야 30장 2-3절입니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상관이 없다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 잘 될 때나 어떤 것이 힘들 때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더 의지한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가볍게 여기거나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안전하게 여기고 믿으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들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힘을 얻는 것은 필요합니다. 신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해서 불신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너무 집착하거나 마음이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말라거나 다른 강대국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보다 다른 사람이나 나라나 그 어떤 재도를 더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본문 7절입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표현을 두 번씩이나 사용한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하더라도 생각지 않은 시련이 우리에게 찾아오면 우리는 비틀거리게 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는데도 실망스러운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책을 강구하게 됩니다.
신자가 기도하고 나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고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자신이 거기만은 가기 싫어서 다시스로 가는 배로를 탑니다. 마치 그 방향으로 가는 배의 삯도 있고 그 시간에 다스시로 가는 배편이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뜻이 거기로 가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이 어무리 받쳐줘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신중해야 합니다. 기도도 하고 나름대로 생각은 많이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했다는 것이 답이 될 수 없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결론을 맺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마치 물가에 심기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히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잎이 청청하여 한발이 오고 더위가 와도 그 나무는 작열하는 태양의 뜨거움으로 인해 시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신자에게는 모든 어려움이 피해가거나 면제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받지만 강줄기로부터 수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그 풍부한 햇빛을 이용하여 그 잎이 청청하며 더욱 풍부하게 자라게 됩니다.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실을 인정하고 인생의 방향을 고쳐야 합니다. 더 이상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사람을 의지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잘 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이 진짜 신자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살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고 사람의 도움에도 감사드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보다 그 사람을 더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에게 매이거나 집착해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인간을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도 의지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은총을 거부하고 사람에게서 인정감을 찾으려는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혀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때로는 사람도 만나야 하고 방법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최종 결재권자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에다가 작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다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한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다가가 당신의 그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요.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기쁘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영혼을 받아주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삶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축복된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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