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통제가 가능합니다. 변화되고 흔들리는 상황 가운데서 배의 나침반처럼 북극성을 따라가십시오. 급변하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안전 지대에 도피하려고 하지 마시고 직면하여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십시오. 실수와 성공를 통해서 또 하나의 수를 배워가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에 유다의 상황은 바벨론 침략으로 인해 예루살렘 함락되고 많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렘 40:1-3).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유대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찾아옴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1절). 군대의 지휘관과 백성의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다 예레미야에게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달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적은 숫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 유다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난감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7장 16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7장 24절입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막히는 것은 방향이 잘못되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대로 숨김이 없이 다 말하겠다고 전합니다. 그들이 예레미아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다 행하겠다고 결단합니다. 5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중인이 되어 달라고 약속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좋든지 나쁘든지 막론하고 순종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그들이 처한 상황이 절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정답을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단언하고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마땅히 갈길과 할 일을 보여주시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말이 정말일까요?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나는 마땅히 갈 길을 가고 있습니까? 마땅히 할 일을 손을 대지도 못하고 살아가는데 급급해 하십니까? 그저 주어진 스케쥴 속에서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오늘처럼 그렇게 살아가십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고민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8장 20절에도 보면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이란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판을 위하여 지도자들을 세울 때 모세의 장인이 이렇게 제안합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재판을 일일이 다 처리하려고 하다 보면 서로가 지치기 때문에 지도자를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지도자들에게 이런 지침을 제공합니다.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이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보여주시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열흘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절박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열흘은 긴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41장 18절에 보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이 유대 땅에 파견한 그다랴 총독을 살해하였기 때문에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42장 11, 12절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여 그의 손에서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여 주십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유대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해 뜻을 돌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유다 땅에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2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바벨론 왕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본향으로 돌려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다.
11세기 독일에 살았던 왕 하인리히 3세는 어느 날 왕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를 느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수도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가 수도사가 되려는 동기가 올바르지 않다며 한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폐하,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규율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수도사가 되려면 폐하도 이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우리 수도원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 수도원 원장인 저와 이 수도원에서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거기에도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그러면 이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폐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백성 다스리는 일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부터 인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간다면 장차 우리에게 어떠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전쟁의 알리는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양식과 궁핍도 당하지 않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13, 14절).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이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애굽에 들어가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 죽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 유다 땅에 머물지 않고 애굽으로 가면 엄청난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을 예레미야는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보여 주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들이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본문 20, 21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gml 마음을 속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은 애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우리가 마땅히 갈길과 할 일을 보여주신 대로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좋든지 나쁘든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속였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 길들여져 있어서 인격적이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땅히 갈길과 할 일은 애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레미di에게 오기 전에 결론을 내리고 왔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내린 결론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확인해 주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 41장 17, 18절에 보면 요하난의 무리들은 이미 애굽으로 가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그들은 Lord` way를 따르지 않고 My way를 고집하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43장 1절에 보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 지휘관들이 유다의 남은 자들, 여러 나라에서 쫓겨났다고 유다에 돌아온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갑니다. 2절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 sb스를 퍼뜨린다고 프레임을 씌웁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가서 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심지어 예레미야 선지자와 바룩을 데리고 애굽 땅 다바네스에게 당도하게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았습니다(렘 43:6, 7절). 그들은 지금까지 예레미야의 예언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렘 40:3).
예레미야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후에도 그들은 바뀌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계속되는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목격하면서도 인간적인 계산으로 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뜻이었습니다. 자기 길을 정해 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태도인 동시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악입니다(20-21절).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의 친구 콜린 타운센드를 만나서 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두 사람 모두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배우가 되는 꿈을 가졌는데 타운센드는 후에 예수를 믿고 선교사와 결혼해 할리우드를 떠났고 먼로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후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먼로는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영화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굳게 결심했지.
그래서 꿈을 이루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어.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야.” 그리고 얼마 후 먼로는 자살하고 맙니다. 그의 선택의 귀결이었습니다. 배우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수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하여 택하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지혜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한 후에 결정을 잘 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결정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결정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요?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대로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이 아닙니까?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식으로 일단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자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위로와 격려도 필요하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자신의 안정이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잘못해서 고난을 당할 때는 그 상황을 피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교훈을 받고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죄악의 형벌을 돌이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레위기 26장 41, 42절입니다.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하모가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죄악의 형벌을 제대로 받지 않고 피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형벌을 제대로 받으면 회복시켜 주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에 대해 섭섭해하지 말고 주님 나에게 이 고통을 통해서 교훈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어도 손해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는 자신의 고집이나 기분과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 말씀의 나침판을 바라보십시오. 성경의 네비게이션을 따라가십시오.
위기가 끝나기를 바라지말고 더 큰 것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피하지 말고 그곳에서 잘 단련받아 정금같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문제에 사로잡히지 말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는 돈이 되는 것보다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데 우선순위를 두시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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