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영적 지도자 필립 얀시는 말하길 ‘오늘의 교회는 웃음도 기쁨도 잃은 사람들이 조문객이 되어 오고간다.’라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교회는 점점 예배의 감격을 잃고 예배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교회를 드나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영적 기갈로 인해 탈진 상태가 되어가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질식 상태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살아있고 감격적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 예배입니다.
1. 사람들이 일하면서 피곤해 하고, 불평하고, 교만하고, 시험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깨어지고, 낮아지고, 약함을 발견하고 은혜)를 받으면 어떤 일이든지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눈물 흘리며 주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배에 실패하면 가인과 같이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까운 상처를 주고 실족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예배 속에서 일하시지 않을 때 가장 슬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현장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열왕기상 8장은 솔로몬이 수도 예루살렘에 성전을 완공한 후에 봉헌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이에”라는 표현은 열왕기상 7장 51절,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 시점을 가리킵니다. 모세 시대에 광야의 성막에서 이제 솔로몬 성전으로 법궤의 자리를 옮기는 봉헌식은 이스라엘 민족의 뜻 깊은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두 소집된 자리에서 성전 봉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본문 2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봉헌식을 드리는 “절기”는 원문에 보면 “헤하그”, 즉 장막절, 초막절을 가리킵니다. '초막절'은 유대 종교력 칠월 15일부터 시작하여 칠 일간 거행되는 절기로, 연중 절기 중 가장 크고 제일 마지막으로 거행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광야의 유랑 생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드린 절기입니다(출 23:16, 신 16:13-16).
본문 1절입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솔로몬은 성전 건축 후에 제일 먼저 한 것이 제사장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성전에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언약궤는 모세 시대에 성막에 있다가, 다음에는 블레셋, 아비나답의 집, 오벳에돔의 집, 디윗 성에서 40년 동안 그리고 솔로몬 성전에 안치되었던 것입니다. 초막절 절기에는 율법이 낭독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절기에 언약궤를 성전에 안치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4장 15절에 보면 언약궤, 법궤는 레위인인 고핫 자손들이 메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약궤(법궤)에 덮개를 씌우거나 벗기는 일 등 언약궤를 실제로 돌보고 감독하는 일은 언제나 고핫 자손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인 아론의 자손들에게 속한 일이었습니다(민 4:5-15). 그렇기 때문에 역대하 5장 5절에는 레위인 제사장들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약궤는 누가 언제 만든 것일까요? 언약궤는 모세 시대에 시내산에서 만든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입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하시기로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을 들고 산에 오르매.”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이 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있었습니다. ‘
3. 히브리서 9장 4절에 보면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이외에도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이와 같이 모세 시대에 처음에는 언약궤 안에서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500년 후 솔로몬 시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이동과 전쟁 등으로 인해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영적인 리더십을 가지고 많은 표적과 기적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지만 많은 불평과 원망으로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에는 그런 강력한 리더십과 기적이 없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 없이 지도자의 지시에 잘 따랐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에는 그들이 언약궤를 바라보는 신앙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언약궤를 바라보면서 세 가지 사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즉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결코 안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해서는 고라와 그 일당처럼 주의 종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된다. 언약의 두 돌판, 즉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선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3장 3-4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다 마쳤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선두에서 언약궤를 메고 이천 규빗, 4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아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바라보며 따라갔습니다. 언약궤가 그들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25장 21-22절입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4. 여기서 언약궤와 증거궤는 같은 것인데 두 가지를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 위에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거기서 만나주겠다는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냅니다. 오늘 본문 5절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 앞에서 수많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아직 언약궤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앞뜰에 놓인 언약궤 앞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성경에서 사용된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시 18:11;사 4:5;단 7:13;마 17:5;계 1:7). 시내 산과
그리고 출애굽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항상 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출 19:16;24:15-18). 그러므로 구름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구름이 이전에 성막 봉헌시에도 나타났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35절입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루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지금 성전 봉헌시에도 구름이 가득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 성전을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 승인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 위 속죄소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내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순간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나타냅니다. 즉 예배를 통해서 드러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잘 준비된 오케스트라팀과 화려한 조명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예배의 필수적인 요건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것이 때로는 필요하지만 한 가지 반드시 나타나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예배의 모든 순서에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코치를 받아야 합니다.
5. 우리가 살아있고 (감격)이 넘치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가 됩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면 성전에서 (생수)가 공급되기 때문에 (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스겔 47장 9절입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고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즉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예배를 드릴 때 생수가 흘러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센 검이 있어 관절과 골수를 깊이 쪼개는 심령의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6. 우리가 하나님 말씀 중심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 때, 세 가지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개인, 가정,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함)을 받게 됩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 후에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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