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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는 것처럼 살 수 없을까? (고린도후서 5:14-1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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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나봐!" 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미쳤다'는 기준이 무엇일까 요? 국어 사건에 보면 '미쳤다'는 것은 정신에 이상에 생거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말합니다. 미쳤다 는 것은 어떤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에 미쳐 있다는 것입니다. 제일 미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이것저것 잘 하는 사람입니다. 한 두 가지라도 깊이 있게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즉 몇 가지에 몰두하고 골몰하고 전문가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미쳤다'는 말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간혹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 예수 믿더니 미쳤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지만 안 미치는 정도에 머물려고 애를 씁니다. 갑자기 열심히 기도하고 이러다가 미치는거 아냐? 중간에 멈줍니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미칠까봐 겁이 나서 어느 선까지 넘지 않습니다.

 

사실 '미쳤다"는 단어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딘가에 미쳐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 미쳤는가? 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쳐도 곱게 미져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가족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가복음 3 20-2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려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병든 사람 고친다고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다는 소식을 듣고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미친 것일까요? 미쳤다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친척들이 볼 때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왜 자신의 일을 하는 것도 바쁜데 다른 사람의 일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식사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실속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시 종교적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는 맹동을 하면서까지 그렇게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이 말라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단번에 고치셨습니 다. 예수님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미쳐 있었습니다. 당신이 성공 그 자체를 위하여 미쳐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공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성공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시작하지만 도중에 성공 그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 를 위로하려고 합니다. 부모된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는 것이 다 너느희를 위하여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자녀들은 부모의 성공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니고 반문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 주는 가시 때문에 찔려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위해 밤잠을 설지면서 열심히 뛰어 왔단 말인가? 성공을 위해 가족의 구성원들도 깨어지고, 직정 동료들 간에 우정도 무너지고, 게다가 직장에서 해고당할 때 그 동안의 성공이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의가 들곤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공을 위해 직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진정한 성공자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스타트 포인트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오늘 본문 14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뒤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들만큼은 잘되게 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스타트 포인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두어야 합니다. 성공의 과정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공한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거기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성공 배후에 추진력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두어야 할까요?

 

로마서 8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37-39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전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 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공의 열쇠요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할 때 어떠한 작점이나 실패에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실 때 사람에게 대한 실망이나 한계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할 때 성공이 주는 가시가 없고 잠원 감격과 보람이 있습니다.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비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에서 움직일 때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권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14절 하반절에서 15절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누구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체험한 사람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기 유익과 자기 욕심을 위하여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돈 그 자체,가 성공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는 이전에 자기만을 위하여 산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낍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체험한 사람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본문 15절 하반절에 보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신자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5 13절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즉 성도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는 삶이 인생의 목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말씀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혹시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면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는 것이 손해보는 기분 아닙니까? 혹시 주님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겁이 나지 않습니까? 주님만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먼저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서는 살 때에는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셋팅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어떻게 셋팅해 놓으셨을까요? 신명기 6 24절 입니다. "어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할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들 때에 진정한 행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성취나 노력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33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중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온혜로 구원받은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성공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거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두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자는 성공의 목적과 용도가 바르게 설정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성공 그 자체를 위하여 결코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며 살아갑니다. 주님을 위하여 살아 간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서 목적과 용도를 바르 게 설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메인 것을 깨닫는 삶을 말합니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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