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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받는 위로(고린도후서 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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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위로라는 책에 보면 나팔꽃이 아침에 활짝 피어나려면 밝고 따뜻한 햇살이 아니라 밤사이의 어둡고 싸늘함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밥에도 아침처럼 따뜻하고 밝게 해주면 정작 아침이 와도 나팔꽃은 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통 가운데 위로의 꽃이 핍니다. 그러면서 찬송가 영혼이 그윽히 깊은데 2 가사를 패러디하게 됩니다. 땅위의 험한 가는 동안 참된 위로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예수를 친구 삼아 위로를 누리겠네, 위로 위로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위로의 물결이 영혼토록 영혼을 덮으소서.

 

세상에서 참된 위로가 어디 있습니까? 전도서 4 1절입니다. 내가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당시에 헬라신은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앗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우상숭배도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 용어 사전에 의하면 위로 괴로움을 씻어주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1:9). 낙심하고 절망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마음에 새로운 힘을 주고 격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위로를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본문 4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느니라.

 

참된 위로는 안이나 밖에서 찾지 말고 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위로는 위로부터 온다고 해서 위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가 넘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곁에서 위로해 주십니다( 14:16, 17, 9:31). 삼위 일체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위로를 얻지 못하고 세상을 기웃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시는 위로와 우리가 받고 싶어하시는 위로가 달라서 그런 아닐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위로는 죄와 관련해서 사용되곤 합니다. 마태복음 5 4절에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여기서 애통하는 것은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4 1, 2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임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유다는 우상숭배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70 기간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것을 예고합니다. 참된 위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위로는 마음에 닿도록 해야 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매일의 삶에서 쌓여가는 죄의 문제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하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 9절에 보면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백하지 않으면서도 죄가 사함 받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백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죄는 매순간 죄를 고백할 용서받고 유쾌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적어도 1 일에 한번 이상은 교회에 나와서 회개의 기도를 하십시오. 어렵겠지만 시간을 정해 놓고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부분을 푸셔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죄로 인해 막혔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기도를 하는데 참된 위로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가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 그리스도의 위로가 넘침니다

 

고린도후서 1 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을 받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 7절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앎이라.

 

당신은 지금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신자가 고난을 당하는 가지 케이스를 제시합니다. 번째 부류는 자신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번째 부류는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부당하게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마음이 상할 피하지 말고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나는 때문에 생명 주었는데 너는 때문에 무슨 고통 당했느라고 물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고 벗어버리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가? 주님의 일을 위하여 애매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에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다가 마음 상한 일이 있을 어떻게 하십니까? 골로새서 1 24절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우노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이라도 교회에서 맡겨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어려울 나의 육체를 사용해서 필요를 채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위로를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알아가고 친밀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나눌 있는 관계에서 발을 빼려고 합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감정과 기분에 민감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하는 성도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육에가 아니라 육체에 채우는 기회로 삼기 원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나를 필요로 사용하지 않아 녹슨 상태로 두지 마시고 닳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겐 교회에 대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심으로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받는 위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받는 위로가 다른 사람의 고난을 견디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실 아니라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다른 이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 6절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위로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고난을 당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챙피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구원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나누어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나누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 8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여기서 환난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압력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아달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더욱 의지해야 것을 권면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죽을 지경에서 건지셨고, 현재에도 건지시고, 앞으로도 건져 주십니다.

 

내가 당한 고통을 나눌 다른 사람이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나만 그런 아니구나. 보다 더한 어려움 속에서도 저렇게 견디어 내는구나. 그러면서 고난을 견딜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저희 교단에서 미자립교회를 섬기면서 제가 경험했던 많은 과정들이 그들에게 위로와 힘을 얻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고통을 겪었던 사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당했던 고난이 은사가 되고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제가 전에 이학실 권사님 보고 싶어서 2011 1 30일에 썼던 목회자 칼럼을 다시 읽었습니다.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내용을 따님에게 카톡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제목은 사랑 자리가 컸습니다입니다. 지난 사랑하는 이학실 권사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인이 베풀어 주셨던 사랑 자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고인은 조국을 사랑했던 진정한 애국자요,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을 많이 하셨던 분입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죽도록 사랑했던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그렇게 어색하게 여기셨던 분입니다. 고인은 누구보다도 사랑이 깊었던 분입니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의 깊이만큼이나 사랑의 차원으로 바꾸었던 분입니다. 나타난 사랑보다 숨겨진 사랑이 훨씬 분입니다.

 

언제나 말없이 행동으로 표현하신 분입니다. 고인은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를 채우는 일에 언제나 민첩했던 분입니다. 교회 나오시는 일을 인생의 가장 기쁨이요, 자랑이요 축복으로 여겼던 분입니다. 내가 교회 나오지 못한 날은 내가 죽은 날입니다.고백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인은 죽도록 교회를 사랑했던 분입니다. 언제나 주의 종들을 끔찍이 사랑해주시고, 성도들을 구석구석 챙겨주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것으로 나누지 못해 미안해 하시던 분입니다.

 

항상 감사의 스토리, 사랑의 스토리, 교회의 스토리만을 위해 살아오신 분입니다.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 사랑 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이제 당신이 바로 사랑 자리를! 며칠 전에 칼럼을 예쁘게 액자로 만들어서 어머님을 기억한다는 카톡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권사님의 사랑의 감동과 위로가 나를 통해서 가족들과 친지들과 성도들과 직장과 사회에 두루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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