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전파 방해란 용어를 아십니까? GPS란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이 사용하는 주파수로 전파 방해신호를 발사하여 GPS 수신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파를 교란하는 방법은 연속파 형태나 펄스 형태의 재밍 신호를 쏘는 것입니다. 특정 주파수나 전파의 사용을 방해하는 교란 형태와 허위 정보를 전송하여 잘못된 위치나 시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파방해가 있으면 항공기가 어선이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안내하며,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먹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 있어서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사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한다고 공격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처럼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담대하게 변호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수건이 씌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고후 3:14).
오늘 본문 4절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요한계시록 20장 2절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옛 뱀, 마귀, 사탄”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 보면 “이 세상의 임금”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지칭합니다. 사탄은 성도들을 계속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성도들을 타락하려고 갖가지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이 세상의 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 이외에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합니다. 사탄은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탄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복음의 광채를 막고 있는 한 영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태양의 빛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태양이 빛을 발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태양의 빛을 바라보지 못하는 눈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 영적인 눈을 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어두움을 좋아하고 빛 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게 만듭니다.
요한복음 3장 18-19절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양심의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성공이나 출세와 상관없이 정죄의 심판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죄로 인한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사업에는 성공하고 출세했지만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의 문제를 다루면서 돈에 집착하는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인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22절입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모든 것이 어둡게 보입니다.
로마서 1장 21-23절에 보면 마음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삶의 초점이 잘못 맞추어져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생각이 너무 허망하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부요와 명예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전부 일뿐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육체적인 본능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정욕대로 살도록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합니다(롬 1:24).
사탄은 복음이 선포될 때 사람들의 머리를 혼란하게 하여 복음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상하게 말씀을 듣는 시간에 성도들의 생각이 세상적인 계획으로 가득 차 있게 만듭니다. 음란한 생각이나 자신의 정욕을 따라 생각이 왔다 갔다 합니다. 다 아는 것이라고 지식의 교만을 부추기면서 귀가 닫게 합니다. 거부감을 느끼게 하여 영혼의 문을 닫게 만듭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끈질기게 방해합니다. 복음의 강채가 영혼 깊은 곳에 투과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8장에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길가에 있다는 것은 주일날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긴 하지만 그들이 믿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해서 믿음이 생기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복음이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도 보면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이 들어가야 하는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막혀서 결심을 맺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걱정과 부와 쾌락에 사로잡혀서 믿음의 장선한 분량에 이르지 못합니다. 온전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믿음의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교만의 돌을 다 끄집어내고 염려와 걱정의 잡초를 다 뽑아내야 합니다.
복음이 전할 때에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전도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에도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직접 증거하실 때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복음이 그들에게 가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마음을 혼미케 합니다. 마음이 계속 혼돈 가운데 있으면서 복음의 광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빛을 거역하면서까지 죄를 짓는 것은 그만큼 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빛 안에 있으면서 죄를 계속 짓는 것은 양심에 큰 타격을 입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광채를 비추십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입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광채를 비추셔서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게 해주셨습니다. 복음의 광채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비추어지는 경험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복음의 광채를 비추어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십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부근에서 복음의 광채를 경험합니다. 바울은 본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려는 영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하늘로부터 강한 빛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눈은 떴지만 갑자기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사흘을 보내게 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 기도를 받는 순간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눈이 열렸을 뿐 만 아니라 영혼의 눈이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복음의 광채가 비쳐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도록 하신 분은 창조 때에 어두운데서 빛이 비치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죄로 인해 삶의 어둡게만 느껴지고 혼돈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우리의 마음에 무지와 죄악과 두려움을 몰아내십니다. 복음의 빛은 우리 마음의 혼미함을 극복하고 사랑의 빛을 비쳐주시는 능력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가운데 모든 것이 밝게 보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매순간 모든 죄에서 사함을 얻고 평안을 우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자는 질그릇 같이 약하지만 그리스도의 보배가 담겨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진가를 경험한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성령의 조명으로 복음의 빛을 받은 사람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합니다(벧전 2:9). 신자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빛, 구원의 빛, 소망의 빛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의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과 방종을 일삼았던 어거스틴을 위하여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됩니다. 밖에서 어거스틴이 30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밀란의 정원에서 복음의 광채가 그에게 비쳤습니다. “어거스틴은 습관적인 죄를 끊지 못하고 비참한 가운데 부르짖습니다. 왜 나의 추한 죄들을 계속해서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까?
그때 갑자기 가까운 집에서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tolle et lege, tolle et lege,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나는 홍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며 성경을 들고 펼쳐 읽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어거스틴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나의 마음 안에 들어오는 신앙의 빛 같았고 의심을 모든 어둠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박용규 교수).“
복음의 광채가 영혼 깊은 가운데 비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직 기회가 있는 동안에 복음의 빛을 받아들이고 반응하십시오. 요한복음 12장 35-3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이제는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고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별과 같은 빛나는 증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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