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세 가지 “어떻게”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어떻게”는 복음이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복음은 어떠한 상황에서 전파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어떻게”는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즉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9절).
세 번째 “어떻게”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날입니다(10절).
첫 번째, 어떻게?
본문 9절에 그들, 우리, 너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지역의 성도들, 너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우리는 바울 일행을 각각 가리킵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갈 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방 종교의 배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전해준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당시에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등지에 흩어져 있던 교인들은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의 소문을 듣고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 있었던 일은 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살전 1:9).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많은 비방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두 번째,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듣고 자신들이 그동안 섬겨왔던 헬라의 다신교 우상들을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과거에 잘못된 것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반드시 과거에 악습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와야 합니다.
신앙은 전인격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신자는 죄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어두움에서 빛으로,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수리가 완전한 리모델링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의 대상이 바뀌고 삶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신앙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앙은 섬김의 대상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삶의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그분의 지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개념상의 존재가 아니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삶의 전역에서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전에 우상을 숭배하였을 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산 소망이 생겼던 것입니다.
세 번째, 어떻게?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믿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려야는 것을 준비시킵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것은 인내와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사역에 기회를 포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순간이지만, 신자에게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소망의 순간입니다. 장래 하나님이 노하심에서 구원을 받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신자의 가장 확실한 특징입니다. 신자들은 이러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옴(과거), 하나님을 섬김(현재), 그리스도를 기다림(미래)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에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부터 돌이켰습니까? 당신의 삶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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