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할 때 유혹받기 쉬운 세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기쁘게 할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그것이 나의 명성에 도움이 될까?
그러나 진정한 사역자는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아첨하는 말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사역을 하면서 어떤 자세로 했을까요?
빌립보에서 고난과 멸시를 당하여 거기를 떠났는데 데살로니가에서 박해가 여전하였습니다. 사람이 심한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피하고 싶을텐데 그래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복음 전파 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양육했던 기간은 3주 정도인데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좋은 성도들을 키우낼 수 있었을까요? 오직 부탁받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1. 순수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3절)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본문 3절입니다. “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원문에 보면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바울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동기가 어떤 간사함이나 부정이나 속임수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바울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자신이 수수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권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권면하다는 것은 단순히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하여 불러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권면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간사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간사함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빙자하여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참된 복음을 전했음을 의미합니다. 부정이 없었다는 것은 부도덕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복음을 빙자하여 다른 이득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돈을 벌려는 동기가 아니라 오로지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동기에서 순수하게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일을 하다가 비난을 받게 되면 낙심하여 시험에 들곤합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 일행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여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2. 일사각오의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4절)
본문 4절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외로 강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여 복음 전하는 자로 합당하다고 인정해주셨다고 대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복음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위탁을 받았음을 선언합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 보면 아나니아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나님은 바울 일행이 복음을 맡기기에 신실한 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 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일사각오의 자세로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24절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4절)
4절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누구를 기쁘게 하는가 그것이 관건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마음이 많이 쓴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입니다. 사람의 필요를 채우려고 하다보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 문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본문 5절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면 때로는 아첨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떤 유익을 얻으려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진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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