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사람(마태복음 18:1-5), 김덕선 목사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달콤 창고"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달콤 창고"는 처음에 강남역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사용자가 초콜릿을 넣어두었으니 누구든 꺼내먹으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소한 나눔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동참했고, 달콤한 간식을 먹고 힘내라는 의미에서 달콤 창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간식을 넣어두는 사람들 덕분에 달콤 창고는 전국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불과 몇 달 만에 백여 곳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따뜻한 섬김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지친 현대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배려와 섬김을 그리워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이 주일 설교로 많이 들어왔던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 누가 큰 사람이냐고 질문합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 큰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큼 믿음이 자란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도 큰 사람이 되고 싶고, 천국에서도 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천국에서도 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천국에서 큰 사람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누가 큰 사람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마가복음 9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에 자신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을 은근히 기대합니다.
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다투고 있습니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누가 서로 큰 사람인가에 대해 서로 보이지 않는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큰 사람과 천국에서 큰 사람은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는 세상의 지위와 신분, 소유의 많고 적고, 많이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 어린아이를 불렀을 때 그 아이는 거기에 와서 서 있습니다. 당시에 어린아이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예수님이 부를 때 반응하여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반응하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다. 겸손은 내 생각이나 내 입장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그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도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서 작은 사람과 큰 사람의 차이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즉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하 작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다 받아들이고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는 천국에서 작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큰 사람일까요?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본문 2절에서 예수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예수님은 천국에 큰 사람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의 자격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돌이켜 회개하는 것, 마음의 변화, 관점의 변화, 가치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들은 잘못될 것을 돌이키는데 탁월합니다. 어른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고집이 있기 때문에 돌이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방금 울다가도 금방 웃음으로 바뀌는 것을 잘합니다. 다윗이 은혜를 모르는 나발의 폭언을 듣고 나발의 남자들을 더 죽이려고 찾아갑니다. 도중에 아내 아비가일이 대신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다윗이 왕이 될텐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다는 충언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다윗은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곧바로 돌이키는 어린아이가 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삼상 25:32-33).
“돌이켜 어린아이가 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란 말씀을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신뢰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어서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은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큰 사람은 세상적인 큰 사람과 완전히 반대입니다. 세상에서 큰 사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큰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갑과 을의 관계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신분이나 지위나 소유에 따라서 친구들을 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른들의 잘못된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본래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삶이란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겸손의 삶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는 않는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극진히 대접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우리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나 기관에 투자합니다.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하찮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사람을 알아주십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져야 합니다. 같이 놀아주고 같이 대해줘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영접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부족하고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서는 큰 사람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결코 어린아이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성의 죄우를 변하지 못하는 자, 어린아이들 12만 명을 아끼셨습니다(욘 4:10-11).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붙잡히면 평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마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들은 어린아이를 공격하여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주일학교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터넷과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게 복음의 감격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기도하는 자녀로 훈련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작은 선물 하나에도 크게 감동하고 고마워합니다. 아이들의 일생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과 문화들이 아이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경건의 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성적으로 타락하거나 동성애에 빠지거나 마약에 빠진다면 얼마나 허탈하고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다른 악한 것들이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른 가치관들이 먼저 마음 깊이 심어 주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어린아이들을 전도하면 부모가 따라 나오는 세대입니다.
잘 풀리는 자녀의 비밀이라는 책, 표지에 이런 글이 눈에 듣어왔습니다. 평범해만 보였는데 어른이 되어 더 잘 되는 아이들의 비결은? 겸손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잘 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시기 때문입니다(벧전 5:5-6).
미국 이스트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에이브러햄 링컨 고등학교는 가난, 폭력, 마약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입니다. 그 학교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대박이 터졌습니다. 수학 고급학슴과정 미적분 시험 만점자를 배출한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응시한 30만 25,00 여명 중 만점자는 단 12명, 미국 출신의 단 한 명이 그 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점자를 가르친 선생님은 35세 한인 염승환 선생님입니다.
뿐만 아니라 염 선생님은 반 학생 21명 전원이 고급학습과정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미국 전역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염 선생님은 전 세계 16위 대학에 선정될 정도로 우수한 UCLA 출신입니다. 그 정도 명문대 출신이면 교직이 걸맞지 않는 다는 게 한인들의 정서입니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계기는 어머님의 말씀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체면 같은 것 생각하지 마라. 나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그게 네가 잘 하는 거라면 일이 잘 풀리지 않겠니? 생각해 보니 그는 자신이 잘 하는 수학을 가르칠 때가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UCLA 대학원에서 수학교육을 공부한 후 다들 가지 않으려는 에이브러햄 링컨 고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어머님이 겸손을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내 말 들어” 교사의 위치에서 “너희 말 들을께”라는 학생의 위치로 내려오는 겸손 말입니다. 결국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염 선생님께 마음을 열었습니다. 11년 만에 아이들이 염 선생님이 시키는 건 뭐든지 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들이 미국을 놀라게 한 기적으로 일으킨 것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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