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어버이 주일 설교 12

by liefd 2026. 5. 6.
반응형

 

 

예수님의 부모공경(누가복음 2:51-52), 김덕선 목사

 

그 사람의 신앙이 얼마나 좋은가 알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척도는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그 사람의 인격적 성숙의 척도이고, 영적, 도덕적인 수준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단순히 의무 차원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 사랑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합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정의란 혈육의 부모뿐 아니라 나이가 많으시 분, (직분)에 있어서 윗사람,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 국가의 (통치차)를 가리킵니다. “공경이란 (예절)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들을 섬기고 그들의 (필요)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앙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8-13절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면 부모님을 따로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2. 신앙생활 한다고 부모 (공경)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가 (살아)계시는 동안 부모 공경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생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최고의 신분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251절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은 요셉과 바리아의 가정에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시기 전 30세까지는 아버지 요셉의 직업인 목수일을 배워 목수로 가정의 생업을 도우셨습니다.

 

마태복음 1355-56절입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겠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목수일을 배우며 도왔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실 때에도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모친 마리아가 혼인 잔치에 참석했는데 갑자가 포도주가 떨어져 주인이 난감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표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2;4). 그러나 모친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로 바꾸시는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육신의 부모에게 얼마나 순종을 잘 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모님을 공경할 때에도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질병에 걸린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예수님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의(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부모를 잘 (모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한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십자가 위에서 마치시면서 모친 마리아의 노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시면서 효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925-27절입니다.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악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자기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때부터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19:26).

 

5. 예수님은 자신의 모친의 노후대책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 공양을 자녀들이나 가까운 (친지)들을 통하여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노인문제나 복지문제는 일차적으로 정부나 사회단체가 아니라 (자녀)들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다른 형제들이나 여동생들에게 맡기지 않고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맡기셨을까요? 그때까지 예수님의 동생들이 아직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친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부모님은 믿음을 가진 자녀가 모시는 것을 가장 편안해 하십니다. 생활 가운데 부모공양도 귀하지만 부모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영적 효도가 중요합니다. 영적효도를 하는 사람은 생활효도도 함께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가장 편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공한 사람보다 생활코드와 영적 코드가 맞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 고통을 당하는 바로 그 순간에 어떻게 어머니의 노후까지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부모 공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타고난 효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다하는 효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지, 스승 혹은 윗어른들을 공경하셨습니다.

 

어제 본당에 내려가서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며 떠오르는 글을 써보았습니다.

 

제목 : 부모님은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부모님은 늘 괜찮다고 하셔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용돈을 드리고 싶어도 늙은이가 돈 쓸데가 어디 있느냐고 괜찮다고 하셔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여행을 같이 가시자고 하면 늙은이 데리고 다니면 힘들다고 괜찮다고 하셔서 괜찮은줄 알았습니다.
생전에 부산에 찾아뵙겠다고 전화 드리면 어머니는 먼데 뭐하려 돈드는데 오느냐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전화 막 끊으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이 뭔데 오겠다고 하는데 오지 말라고 하느냐
이가 빠져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시는 모습을 보고 치과에 가자고 하시면 요즈음 입맛이 없다고 괜찮다고 하셔서 진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차에서 졸려 껌을 씹다가 앞 이가 쑥빠쪄 피가 흥건히 젖은 휴지를 갖다 대며 그때 괜찮다고 해서 아버님의 이를 해드리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목회자라고 늘 핑계대면서 이렇게 해도 당연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네요. 부모님이 괜찮다고 하시는 것을 이제 알아차리고 잘 해드리고 싶어도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다한 효도를 실천해야 할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계신 나이 드신 어르신들, 주위에 친지들, 스승, 윗 어른들이십니다.

 

반응형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 주일 설교 14  (1) 2026.05.06
어버이 주일 설교 13  (0) 2026.05.06
남자와 여자의 차이(창세기 3:11-17), 김덕선 목사  (0) 2026.05.06
어버이 주일 설교 11  (0) 2026.05.05
어버이 주일 설교 10  (1) 202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