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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 주일 설교 14

by liefd 2026.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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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부모공경(누가복음 15:17-21), 김덕선 목사

 

오늘은 어버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탕자의 부모공경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가복음 1511-32절은 탕자를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본문입니다. 탕자가 오늘 본문에서 과연 아버지를 공경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버젓이 살아계신 데 유산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 자체가 불효입니다. 더구나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가지고 건전하게 사업에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면 그래도 덜 억울할 텐데. 자신의 유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했던 탕자입니다.

 

재산을 다 날린 후에 그 나라에 흉년이 크게 들어 그 나라의 사람들 가운데 돼지를 치는 알바를 구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그것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버림받는 느낌을 처절하게 당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아버지 집에 있었던 추억들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바로 그 순간 탕자는 스스로 돌이키는 기회로 삼습니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돌이키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탕자는 육신적으로는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아버지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집에서 평생 가까이서 살았지만 마음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탕자는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후에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탕자의 효도는 세상에서 아버지 집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아버지 집에 가면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여기서 배가 고파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만약 아버지가 품꾼에게 양식을 충분히 주지 않았더라면 구태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당신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주린 배를 움켜지고 절규할 때,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신당할 때 뭐가 그리워지십니까? 부모 공경은 부모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게 된 동기는 배고픔이었으나 그가 되돌아가기를 원하였던 곳은 아버지에게로입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길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아버지의 판단과 처분에 전적으로 맡기는 순종의 길을 의미합니다.

 

탕자는 바로 그 대상이 아버지입니다. 탕자가 집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품꾼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품삯을 넉넉하게 주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로부터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와 불행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했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효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격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람입니다. 효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께로 마음이 향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은혜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이렇게 용서를 구하겠다고 결단합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진정한 효도는 육신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그건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기본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적인 효도는 차원이 좀 다릅니다. 신명기 516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효도의 동기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신자는 효도합니다. 자녀 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에서 잘 되고 생명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 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본문이 에베소서 61-3절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 공경은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는 공경하고, 어떤 부모는 공경하지 말라고 조건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모라는 그 자체 때문에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그 결과로 땅에서 잘 되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은 부모의 유익보다는 자녀들에게 유익이 훨씬 더 많습니다.

 

2. 탕자의 효도는 스스로 아들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탕자는 아버지께 내가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용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그 자체가 효도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그 자체를 최고로 기뻐합니다.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없겠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도 써 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탕자의 효도를 복음적인 효도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에, 첫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동안 자신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따집니다. 자기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너무 기뻐서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속이 뒤집힌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와서 들어가자고 권면합니다. 제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의 말씀을 거슬린 적이 없이 나름대로 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 한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나와 내 친구를 초대하여 파티를 해주신 적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탕진해 버린 이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로 잔치를 베푸십니까? 동생이라고 여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큰 아들은 스스로 있다고 생각하고, 작은 아들은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아들은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리와 창녀는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잘 하냐, 잘못 하느냐를 크게 보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고 감사하는 자를 크게 여기십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자녀로서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효입니다. 효도는 자녀로서 나는 자격이 도저히 없는데 나를 이렇게 낳아주시고 키워주시는 그 자체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에 가서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탕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의 신분에서 품꾼의 신분으로 바뀌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탕자는 아들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 집에 도저히 갈 수 없다고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효도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확실하게 선을 긋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생각지 않은 환대에 그냥 넘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오면 다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자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가 있다고 합니다.

 

3. 탕자의 효도는 아버지를 통해서 아들의 자격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22-23절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들에 대한 이러한 조치는 아들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는 표시입니다. 아들의 자격은 스스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내가 스스로 아들의 자격을 따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는 우리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24절입니다.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효도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다는 것이 챙피한 일이요 자존심이 상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아들이 돌아왔다는 자체가 심적인 부담일 수가 있습니다. 큰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마음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최대의 관심사는 아들이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왔다는 데 있습니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내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은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을 집안 전체가 즐거워한다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와 집안 식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화를 냅니다.

 

31절입니다. “아버지께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고, 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하지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 아니냐,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 때문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은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어 교회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공감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아버지의 가치관과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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