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

스승의 주일 설교 7

by liefd 2026. 5. 15.
반응형

 

 

교사 리바이벌(요한복음 21:15-19), 김덕선 목사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찾아 가십니다. 여기서 디베랴 바닷가는 갈릴리 바닷가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61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디베랴 바닷가"라고 불리운 것은 갈릴리 지방의 수도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들에게, 특히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당하시던 날 밤 자신들의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전혀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에 붙잡혀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말하고 있고 다른 여섯 제자들도 덩달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2021절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영혼 구원의 귀한 사명을 분명히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실패와 한계에 부딪혀서 사명을 포기하고 싶은 갈등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한계로 인해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제자들은 허탈감과 자책감에 빠져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날 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3).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님이 바닷가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한계와 실패에 빠져 있을 때는 예수님도 알아 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계속적으로 돌보고 계셨고 그들이 그 밤에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6절에 보면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했더니 물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그 제자, 즉 요한이 베드로에게 주님이라고 외칩니다(7).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려 육지에 계신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분문 11-12절에 보면 예수님은 숯불을 미리 피워 놓으시고 그 위에는 생선이 놓여 있었습니다. 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조반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셀프 서비스를 하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가져다 주십니다. 낙심과 좌절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신 후에 예수님은 그에게 교사의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십니다. 15, 16, 17절에서 각각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사의 리바이벌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을 발견하게 됩니다.

 

1. 교사는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베드로는 어떤 경우에는 주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믿으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621-23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실 때 이렇게 항변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는 주님을 위하는 것처럽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의 구원계획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꾸짖으십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심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먹이면 그 말씀에 대한 열매가 자랍니다. 성령의 소욕이 강하여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을 심으면 그 마음에서 육체의 소욕이 자라게 됩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색욕과 탐심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2절 말씀입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여기서 순전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섞이지 아니하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순전하고 신령한 젖, 즉 섞이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먹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2. 교사는 학생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사의 사명을 주실 때 첫째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둘째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셋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교사가 언제나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네가 네 자녀들보다 네게 맡겨진 영혼들을 사랑하느냐? 네가 안고 있는 문제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가?

 

그런데 포기하지 않는 이 사랑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으로 사랑하려고 하면 자칫 나에게 잘하는 사람만 사랑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꺼리게 됩니다. 내게 맡겨진 양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공급받아 그 사랑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경험이 없으면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사랑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별히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대해 주었는데 그들이 아무 말도 없이 떠나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적으로 좀 섭섭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조금도 섭섭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함께 있었던 것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 또 다시 그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됩니다.

 

교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와야 섭섭한 마음이나 원망 불평이 생기지 않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속상하거나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인지라 실망이 들어오게 되고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오면 그래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사의 사명을 맡기실 때 아가페적 사랑을 요구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요한일서 316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할 때 언제나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4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그 어떤 것도 아까울 게 없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3. 교사는 학생들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깨어 기도하지 못함으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띠 띠우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녔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킴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람의 유전이나 계명이나 전통으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들기가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중요한 사항을 두고 결정을 내릴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판단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지침을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자기의 욕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때에 맞는 양식을 공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설득이나 논리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언제나 중보기도를 통해 각자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지혜로운 카운셀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교사로서 다시 한 번 사명을 회복하는 놀라운 계기로 삼으시기를 소원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순전한 말씀만을 먹여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소원합니다. 학생들에게 믿음의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최고의 교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당신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당신의 상급이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반응형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승의 주일 설교 5  (1) 2026.05.15
스승의 주일 설교 6  (0) 2026.05.15
스승의 주일 설교 8  (0) 2026.05.15
스승의 주일 설교 9  (0) 2026.05.15
스승의 주일 설교 10  (1)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