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과 당신의 운명(갈 3:13-14)
어떤 사람은 자신과 관된 모든 사람들이 자꾸 꼬이고 일이 잘못되는 것 때문에 속상해 하고 불안해 합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이 자꾸 죽어가는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립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죄를 지으면 형벌과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 압니다. 그래서 뭐가 일이 꼬이거나 잘 안되면 죄 받아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세상은 비참해지고 불행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불행과 저주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과학의 발전이나 문화의 진보가 죄로 인해 파생되는 불행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임파서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무지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을 깨트린 사람은 범법자이므로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속에서 "저주"는 파멸과 단절을 스스로 이루어 가는 주술적인 능력이거나 마귀로부터 오는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으로서 올바른 관계를 복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다.
1. 예수님의 고난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신 것이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결정적인 사건임을 아십니까? 왜 그런지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 먹은 이후 아담의 후손들, 모든 인류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우리를 위하여 해결해 주시분이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저주를 받은 자의 형벌입니다. 죄수 가운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형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 하반절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 전체를 항상 지키지 않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저주 아래에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이 주는 저주의 형벌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구속이란 노예의 값을 치르기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몸값은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한 사람에게 팔리게 됩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될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해 대신 저주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당신의 운명은 저주받아 마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저주에서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고난이 당신에게 아브라함의 복이 미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받은 것만이 아닙니다. 보다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은혜일까요? 본문 14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미치는 그것은 무엇일까요? 복음의 약속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또 다른 좋은 것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복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이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힐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성령의 약속이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시고 믿는 자들에게 내주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들이 주는 상처로 인해 더 이상 불행해지지 마십시오.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에 매몰당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셔서 우리를 거기서 속량해 내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나 자신의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약속의 말씀에 이끌리고 성령께 이끌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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