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세 시간표"라는 부제가 있는 책 제목 하나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베스트 작가 쑤쑤가 지은 책입니다. [멈추어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돌아봐야 할 때]. 누구에게나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서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도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가고 싶어도 가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다가 막힐 때 그때 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발람은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가야 했을까요, 가지 말아야 했을까요? 먼저 본문의 배경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 진을 구축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워합니다. 민수기 22장 2, 3절입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여기서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이란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남왕국 '시혼'의 모든 성읍과 아모리 북왕국 '옥'의 모든 성읍을 완전 초토화시킨 일을 가리킵니다(민 21:24, 35).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이 워낙 수가 많고 강하기 때문에 전쟁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200만명으로 추산하면 그중에 군인이 60만 명으로 인구의 1/3입니다. 그래서 발락 왕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 미디안 장로들이 발락 왕에게 발람을 추천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된다고 조언했을 것입니다. 미디안 장로들과 모압 왕 발락은 어떤 관계일까요?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넷째 아들로서(창 25:1-2), 그들 중 일부는 모압과 암몬의 동편 경계 지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창 36:35). 미디안 장로들은 모압 왕실에 고용되어 각종 문제들에 대해 점을 치거나 조언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브올 사람 발람이 복을 빌면 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줄로 믿었습니다. 발람의 이름의 뜻은 탐욕자, 백성을 망하게 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당시 고대인들은 복술가나 마법사들의 주문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상대방이 저주를 받고 큰 피해를 입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민수기 22장 7절에 보면 모압의 귀족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잔뜩 가지고 발람에게 찾아와서 발락 왕의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발람은 당시에 고대 근동에서 가장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혜택을 누렸던 유프라스테 강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모압에서 발람까지는 640킬로 떨어진 먼 거리였습니다. 발람이 그들에게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십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수 있으면 자주하려고 하는 태도를 책망하십니다. 모압 왕이 보낸 사람들에게 자기와 함께 유숙하도록 한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지면을 덮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가고 싶더라도 가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자신은 가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셔서 갈 수는 없다는 뉘앙스입니다. 발락은 또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과 더 많은 재물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라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이는 발람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그런 것에 매이지 말고 무조건 오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만 하면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랍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발락이 집을 가득채울 만큼 은금을 준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덜할 수가 없습니다. 발람은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마음은 이미 물질에 빼앗긴 상태에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고 선언하지만 마음은 완전히 다른 데 있습니다. 발람이 그래도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본문 19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 보겠다고 합니다.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에 발람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씀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는 응답이 빠릅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게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
우리는 여기서 헷갈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발람에게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두 번째는 일어나 가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발람이 그들을 따라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만 발람의 욕심 때문을 아시고 그렇게 허락한 것 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처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내가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처음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지급은 가라고 하실까요? 상황이 바뀌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상황에 따라서 이랬더 저랬다 하시는 분일까요? 결코 그럴수가 없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께서 이랬다 저랬다 하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을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기 위하여 금식 기도, 작정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 가버립니다. 작정 기도는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이 답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길 원하십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더 구하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발람은 갈등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욕심도 채우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셔도 발람은 가고 만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일어나 함께 가라고 하십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안장을 지우고 모압의 고관들과 함께 떠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의 귀족들과 함께 떠납니다. 그러나 발람이 그들과 함께 가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을 막으려고 길에 섰습니다.
가다가 막힐 때 그때 잘 해야 합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봅니다. 그래서 나귀가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갑니다. 발람이 나귀가 길로 돌이키게 하려고 채찍질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습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가 없는 좁은 곳에 섰습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립니다. 발람이 화가 나서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립니다.
발람이 나귀가 길로 돌이키게 하려고 채찍질합니다. 이와 같이 탐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영적으로 닫히게 되고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습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가 없는 좁은 곳에 섰습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립니다. 발람이 화가 나서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립니다.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열고 발람에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이나 때리느냐? 발람이 나귀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다. 내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너를 죽였으리라. 이처럼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혀 영적으로 무지한 자는 위기에 처해서도 타인의 실수만 책할 뿐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못합니다(벧후 2:12).
나귀가 발람에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까지 당신을 태워드렸는데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거역한 적이 있었습니까? 발람이 말하되 없었느니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립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온 것이다. 나귀가 만약 세 번이나 피하지 아니했더라면 내가 너를 벌써 죽이고 나귀는 살렸을 것이다.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합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것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자신은 가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 때문에 나는 이런 저런 손해를 보았다고 상처가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마지 못해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길이 막힙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라고 하시면서 중간에 막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발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래도 갈 것을 아십니다. 다만 발락에게 가서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갑니다.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이 욕심에 기울어져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가?입니다.
발락은 자기를 찾아온 발람에게 모압의 변경의 끝 아르논까지 가서 환대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를 저주해주면 최고의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모압왕 발락은 메소포타미아의 술사 발람을 이스라엘 진영의 끝 부분까지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까지 인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습니다(41절). 왜냐하면 고대인들의 통상 생각에, 저주가 그 효력을 보다 충분히 발휘하려면, 그 저주의 대상 및 방향을 반드시 보고, 항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제단을 쌓아달라고 하고 제사를 드립니다. 구약 시대에 드리는 제사와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먼저 제사 드리는 대상이 다릅니다.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조상들을 위하여 드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고전 10:20).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제사는 그 대상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 드리는 목적이 다릅니다. 이방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재난을 물리치고 기복적인 목적으로 드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제사는 언약의 관계에서 자신이 지은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의미로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말씀을 주시면서 발락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7-8절입니다.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는 것은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이 제시한 부귀를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발람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백성을 저주할 수 없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에게는 어떤 저주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백성을 저주하면 그 저주가 자기에게 일어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2:3).
신자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불신자들로부터 악담과 위협과 폭언을 혹시 듣는 한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분노하거나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에게는 그런 말이 먹히지도 않고 통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저주와 악담의 말을 퍼붓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람들의 막말이나 폭언으로 인해 위축당해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악한 사람이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영적인 교훈이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에게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십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지만 그의 욕심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오 전했지만 자신의 탐욕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발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발락 왕에게 자신의 사악한 계략을 알려줍니다(민 31:6). 모압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합니다. 제사드리는 절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인들과 음행합니다.
이것이 브올의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전염병이 돌아서 2만 사천명의 미스라엘 백성들이 죽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발람은 이스라엘 군인들에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민 31:8). 요한계시록 2장 14절은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이렇게 교훈합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는데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넘어뜨리는 음모를 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5, 16절입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유다서 1장 11절에는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즉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기 위하여 불의의 삯을 받았던 것입니다, 발람은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어 잘못된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발람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책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더하실런지를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물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판단력이 흐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다는 마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갔는데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내 욕심이 앞서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가더라도 내가 원하는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해야 합니다. 자동차가 역주행하면 대형사고가 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내 욕심대로 역 주행하면 너무 위험합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커녕 축복하고 돌아옵니다. 끝내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남자들을 미혹시켜 나중에 모압을 망하게 하고 자기의 죽게 됩니다. 가다가 막힐 때 정말 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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