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느헤미야서를 통하여 리더십에 관하여 함께 도전받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시대적인 상황마다 필요한 일꾼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당시에 느헤미야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은 어떠한 상황이었을까요? 남 왕국 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약 70년간 포로생활을 한 후에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일으켜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백성들은 주전 515년에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것이 곧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완공하고 제사를 회복했지만 주전 515년으로부터 약 70년의 세월이 흘러도 거기서 더 발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도 안전하게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도시에 성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대인으로 주전 444년에 3차로 바벨론에서 귀환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귀환하기 2년 전인 주전 446년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가 통치하던 제 이십년 기슬르월 즉, 12월에 수산궁에 있었습니다(1절). 거기서 느헤미야는‘하나니’라는 형제가 예루살렘에 갔다 왔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습니다(2절).
그때에 하나니는 슬픈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장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환난(t과 능욕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벽이 무너져 없어져 버리고 성문이 다 불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슬퍼하며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1. 파워 리더는 영적인 가치관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 왕의 술 관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왕의 음식에는 항상 음모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술 관원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술에 독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때로는 먼저 조금 마셔 보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왕의 생명을 보호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술 관원은 왕의 신임을 받았고, 많은 권력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관심사는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비록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영적인 가치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도들과 교회의 형편에 관한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서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나누는 대화는 주로 어떤 대화입니까? 성도들이 영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교회의 형편이 어떠한지에 관심이 있습니까? 전도회나 소그룹을 맡은 책임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룰 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를 세워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두고 행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부모의 관심사는 자녀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가? 보다 먼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에 철저한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영혼을 잘 되는 일에 가치를 두면 공부는 저절로 열심히 하게 되고 실력있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학원에 얼마나 열심히 나가는가? 보다 교회생활에 얼마나 완벽한가?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연봉을 얼마나 받는 것보다 그들에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얼마나 감당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영적인 가치에 우선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파워 리더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니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관여하시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오해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오해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이 세상에 왜 불의한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이 생깁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영적인 지도자로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자신의 고정 관념에서 생긴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고 쉽게 대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신 분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입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은 크신 분이요 또한 두려운 분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요, 마지막 날에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람이 우리를 아무리 괴롭힌다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보내서 멸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코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죽은 이후에 세계까지 신경 쓰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 생각입니다. 만약 우리가 죽은 이후에 지옥과 천국이 진짜로 있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에서 후회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일입니다.
우리는 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과 천국이 진짜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옥과 천국이 있을지 모른다는 변수를 고려하고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지금까지 예언한 모든 것이 성취되었고, 천국과 지옥에 대한 예언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 가운데 천국과 지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 증언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이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차원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언약의 차원에 있어서는 축복과 징계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언약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징계와 고통을 주시는 분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서 고통을 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본문 7-8절입니다.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사실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과 문제의 대부분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인간의 범죄에 의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을 거역하면 그의 택한 백성들을 흩어버리겠다고 이미 예고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 2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언약에 근거해서 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겪게 되는 많은 것들이 결코 우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해서 이루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신명기 30장 19절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이제 우리는 생명의 길을 선택하여 우리와 자손이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사망과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인생을 청산하시기 원합니다. 더 이상 나와 내 자녀에게 잘못된 불행의 사슬을 물려주어서는 안됩니다.
3. 파워 리더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고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행이 찾아온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물질)과 아세라(쾌락)의 우상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버지 집이 크게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직접 잘못한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책임을 느끼고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과 조상이 범한 죄악이라 하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포함시켜서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황폐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소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내세워 하나님께 떼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축복해 주시지 않거나 도와주시지 않으면 신앙을 포기하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언약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나이까? 이제 그 약속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오니 기억하여 주옵소서.
파워 리더는 어떠한 경우에도 영적인 가치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는 사랍입니다. 파워 리더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할 줄 아는 탁월한 사람입니다. 파워 리더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파워 리더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언약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파워 리더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파워 리더는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복과 생명을, 그리고 저주와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킬 줄 아는 탁월한 선택을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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