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1-7장으로 제 3차 포로 귀환시 느헤미야가 일차적으로 성벽 재건에 관심을 갖고, 이방 대적들의 관리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둘째는 8-13장으로서 성벽이 완공된 후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여 백성들을 성별하여 굳건하게 세우는 영적 부흥 운동이 전개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고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하는 등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4-19까지는 예루살렘 성벽 남동쪽을 재건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문에서부터 성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그리고 예루살렘 성의 남동쪽 돌출부를 공사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벽의 둘레가 약 480미터 철도의 작업이며, 이를 위해 일곱 작업단이 구성되었습니다. 그중에 여섯은 지방 행정관에 의해 주로 작업이 진행되었고, 나머지 하나(17)는 레위 사 광에 의해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곳 성택 재건에 참여한 자들은 사실 직접적으로 예루살렘의 성벽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재건의 작업이 이스라엘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이 중요한 성읍 주민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그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후 성읍들의 변두리 지역에 새로 세워진 성읍의 주민들과 지도자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는 일념으로 성벽재건에 참여했습니다.
14절에는 분문을 재건한 자들의 명단과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에는 샘문을 중수하고 다윗성의 내려오는 층계까지 공사한 자들의 명단과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6-19절에는 그 이후부터 군기고 맞은편까지 재건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과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절에는 "분문은 별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라고 했습니다. 분문은 성읍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오물을 실어 나르는 문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누추한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런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힘든 부서가 어디 일까요? 교회 안에서 가장 편한 부서가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편하고 힘든 일을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서로 비교하면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저 3D 현상이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부서에 대해 긍지를 가지는 것이 좋지 한 다른 부서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부서별로 서로 아끼고 도와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각 사람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 합니 다.
신앙적인 성공은 남들이 알아주는 위치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수고하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다길이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자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정말 대단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들은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다고 했습니다(느 3:14).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공사를 끝까지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난관이 찾아와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통과해야 몇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나에게서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있습니다. 마치 내가 손해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누가 맞장구를 쳐주면 그래도 힘이 납니다. 하지만 나만 이렇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엘리야 신드롬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결과가 눈에 보이게 달라지지 않을 때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무익히 공연히 내 힘만 다하지 않는가?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소리가 크게 들려옵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다같이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그동안 10년 동면 우리는 죽은 땅을 기강 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씨 뿌리기만 단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저의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서 우리를 향하신 약속입니다. 기도의 씨를 뿌리면 기도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의 씨를 뿌리면 전도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교육의 씨를 뿌 리면 교육의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부지런히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차차 익어 곡식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찬260장)
과거에 아무리 해도, 안됐다는 것 때문에 미리 포기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다시 시작한다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씨를 뿌릴 때에 나자 아니할까 슬퍼하며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름으로 단을거두리로다
15절에는 샘문을 재건한 사람의 명단과 그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19절에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15절과 19절에 각각 "다스리는'란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유대지방을 다스리는 고위층 관리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성벽재건에 솔선수범하여 참여하였습니다.
샘문은 물을 공급받기 위해 사용된 문입니다. 셀라 못은 실로암 못입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안 사람 전부를 먹일 만큼의 맑은 물이 솟구치던 기혼 샘은 '솟아난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요 9:7)는 뜻으로 기혼 생에서 솟은 물을 받아 형성 된 저수지가 실로암 못입니다. 기혼 샘은 여호와를 잘 섬기고 백성을 위해 헌신 적이던 히스기야(대하 32:30)가 성안 사람들을 위해 기원전 700년경 터널을 파서 물을 끌어 들였는데 1880년 아랍 소년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실로암은 예수님 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곳입니다. 지금도 맑은 물이고인 533m의 터널을 순례객은 기념삼아 통과해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의 물은 기드론 골짜기 서쪽에 있 는 기혼샘에서 강을 통하여 들어오는데 그 근처에 왕의 동산이 있었으며 살룬은 그 못가에 성을 쌓았습니다. 다윗성은 예루살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샘의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총계는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었습니다.
16절에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이스북의 아들 느헤미아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다윗의 묘실은 시온의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묘실의 마주 대한 곳까지 중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 히스기야 왕은 기혼의 샘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성 안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때 흘러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여기서 "파서 만든 못"입니다.
17절에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알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바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성전 봉사에 바빴던 레위 사람이 성벽재건에 참여했다고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18절에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지 헤나낫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이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마치 퍼즐과 같아서 한 부분 한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전체 윤곽을 맞추고 세부적인 조각을 맞추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에 따라서 각각 교육부서와 전도회에 반드시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은 어떤 부서에 소속되어서 봉사하지 않고는 언제나 그대로 있 습니다. 지난주에 타교회에 다니시는 어떤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그장로님이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전에 예배만 보고 집에 갈 때는 신앙이 자라지 않고 그대로였는데 각 전도회에 소속되어 봉사를 하니까 신앙이 많이 자라더 라구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 한분도 예외가 없어 세 사람 이상이 한 팀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을 받는 것도 은혜다(에스더 2장:15-17), 김덕선 목사 (0) | 2026.04.19 |
|---|---|
|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욥기 33:14-30), 김덕선 목사 (1) | 2026.04.19 |
| 탁월한 리더(느헤미야 2:1-10), 김덕선 목사 (1) | 2026.04.18 |
| 파워 리더(느헤미야 1:1-11), 김덕선 목사 (1) | 2026.04.18 |
| 가야 할까, 가지 말아야 할까?(민수기 22: 31-35), 김덕선 목사 (1) | 2026.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