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본당에 고양이 소리가 한참동안 크게 들렸습니다. 방송실에서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 까 방송실 환풍기를 뜯어보니 고양이가 죽어 있었습니다. 이 장로님이 죽은 고양이를 꺼집어 내었습니다. 그때부터 본당에는 죽은 고양이와의 악취와의 싸움이 진행되었습니다. 고양이 사체를 발견한 첫날은 그 냄새에 취해 설교가 제대로 안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둘째날, 셋째날, 환풍이 틀어 넣고, 그러다가 에어콘 강풍으로 틀어 놓고 이것 저것 뿌려도 좀처럼 냄새가 안나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영적으로 우리에게 죽은 것을 제거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나는 과연 영적으로 죽어 있는가, 살아있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데 교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가면서 갖은 악취를 품기고 있는 데 본인은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인 후각이 무디어졌거나 영적인 축농증에 걸려서 악취를 전혀 못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한 주 동안 죽은 고양이의 악취를 맡으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게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게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오늘 본문은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은 왜 갑자기 사망의 냄새와 생명의 냄새를 언급해야 했을까요? 과연 나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을까요?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까?
먼저 본문의 배경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계획했다가 일정을 변경함으로 많은 오해와 불신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운 후 1년 반 동안 그들 가운데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행 1:11). 고린도교회에서 발생한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와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사도 바울은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됩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극악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습니다(고전 5:1).
이로 인해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더 큰 상처와 불신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이 편지를 보냄으로써 회개의 기회를 주면서 직접 방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를 아끼는 마음으로 방문 일정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고후 1:23). 사도 바울은 눈물의 편지를 통해서 자신이 성도들을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 사람을 징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회개한 증거가 보이면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라고 권면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잘못햇다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는 것은 사탄의 궤계에 속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11절). 사탄은 내가 너무 무서운 죄악을 지었기 때문에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징계의 목적은 변함없이 사랑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데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교회 안에서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까? 도덕적으로 세상 사람들보다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의 가정이 불신 가정과 비교해서 다른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교회는 다닌다고 하면서 온갖 더럽고 추한 악취를 다 품어내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교회는 다닌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기는커녕 죽음의 악취를 각처에서 풍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과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가고린도 교회의 방문 이후에 아픈 가슴을 안고 에베소에 돌아옵니다. 이 눈물의 편지를 디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회에 직접 방문하여 전달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보내면서 드로아에서 만나자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마게도냐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디도를 만나지 못해 일이 잘 안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디도를 보낼 때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에 선교헌금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혹시 강도로 인해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여기고 실천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본문 14절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에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지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든 상황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거부, 에베소에서 추방, 마게도냐의 염려에도 둘구하고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을 로마 황제가 개선할 때 길가에 향을 피워 냄새를 내는 것에 비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로마제국 군대가 주피터 신전에서 승전을 기념하며 향을 피우는 장면을 상기시키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복음을 전하는 것에 비유하여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여기서 "향기"란 헬라어 단어, '유오디아'는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창 8:21, 출 29:18).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때에 희생 제물을 태우면 번제의 향기를 하나님이 흠향하십니다. 성도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산 제물과 같습니다(롬 12:1). 복음을 전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얻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산ㅇ 제물과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가지 냄새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애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망의 악취가 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라는 말은 당시에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시들을 가리킵니다. 생명과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 사역을 그리스도의 향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8장 8절에 보면 어떤 천사가 큰 대접에서 향을 가득히 담은 것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립니다. 이 향이 무엇일까요? 땅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 찬송, 모든 예배 순서가 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향기입니다. 17절에 보면 여기서 향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입니다. 신자들은 선한 행실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만약 신자라고 하면서 자신을 나타내면 악취가 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란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날 때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냄새입니다. 인간적인 냄새가 나타날 때는 사망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냄새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줍니다.
조화인지 생화인지 구분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조화는 향기가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대기 오염 때문인지 꽃 향기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예쁜 흑장미인데도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없습니다. 벌과 나비는 향기를 찾아오지만 파리와 모기는 향기를 싫어하여 멀리합니다.
분명히 성도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라진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커녕 인간의 악취를 풍겨내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헤를 사모하는 영혼들이 찾아오고 싶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캐논 캘러한은 [영향력으로 남는 교회]라는 책에서 교인들의 상태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건강한 상태, 약한 상태, 죽어가는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자신을 나타내는 것에 관심이 많은 교회는 약한 교회, 죽어가는 교회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발견하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를 워합니다. 21세기의 교회응 교회 규모가 아니라 교회의 영향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 개개인이 신앙이 좋은 교회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이웃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기는 모습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착한 행실을 통해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를 교회의 영향력으로 끌어 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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