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달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탁월한 리더가 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크리스천 리더는 영적인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갑니다. 크리스찬 리더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입어야 합니다. 크리스찬 리더는 기도와 더불어 치밀한 준비와 계획성이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찬 리더는 영성과 전문성의 두 날개가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리더는 next you(그 다음은 당신)의 파장을 일으켜야 합니다. 크리스찬 리더는 반대자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위기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크리스찬 리더의 마지막 특징에 관해 함께 도전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크리스찬 리더는 회복의 중요한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1장에서 7장까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8장부터 13장까지는 신앙생활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역시 신앙생활의 회복이 정말도 필요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신앙의 회복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몇몇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 동안 하다가 그만 중단되는 것도 아닙니다. 회복에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원리란 언제나 어디서나 계속적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신앙의 회복은 다같이 모여서 거룩한 각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첫째 신앙의 회복은 다같이 모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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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서 8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을 때 회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회복은 거의 대부분 함께 모일 때 나타났습니다.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들이 오순절 날 함께 모여 전심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회복은 다같이 진행되어야지 부분적으로 진행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다같이 깨어서 하나님을 섬겨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방해로 인해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때문에 식구들이 함께 회복되지 않으면 마귀의 도구로 쓰임받는 자가 생기게 됩니다.
교회생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같이 함께 모이면 전체 돌아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소외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영적무장을 하기 때문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이는 일에 실패하면 영적으로 무너지고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흔이 우리는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아무 게가 들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같게 됩니다. 약한 부분이지 않은채 그대로 갑니다. 금년 한해는 모이는 일에 힘쓰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부흥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도 돌아가면서 빠지면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금년 한해만이라도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한다는 마음으로 실천해 보십시오. 반드시 변화가 나타납니다. 기도회를 인도해 봐도 그렇습니다. 몇 사람만 더 참석해도 기도가 뜨겁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둘째, 신앙의 회복은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느헤미야서 8장 2-3절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율법책의 말씀을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이 다같이 모였습니다. 어른들도 모였습니다. 아이들도 모였습니다. 청소년들도 모였습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바쁜 일정들이 있었지만 회복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였습니다. 가족들 전체가 변화 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말씀을 받아서 함께 변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설교에는 강조점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어떤 때는 심판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사랑의 강조에 대한 설교를 듣지 못한 사람이 심판에 대한 설교만 들으면 부담을 느끼게 되고 시험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같이 집중적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 전체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느헤미야 8장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에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알아들을만한 수준의 지식레벨을 가진 사람은 다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깨닫고 울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기만 하면 자신의 죄악이 생각나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2. 신앙의 회복은 구체적인 결단과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첫째, 시간 사용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 13장 18절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었지만 시간 사용이 잘못되었을 때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야 하는 비참한 불행을 맞게 됩니다. 그들의 생활 가운데 부분적으로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라 삶의 전체가 쓰나미의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을 때는 애경사가 있어서 빠지고 손님이 찾아와서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알고 신앙의 회복을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일성수에 성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일성수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주일성수는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주일성수는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일성수에 실패해서는 안됩니다. 주일성수에 실패하면 삶 전체에 실패하게 됩니다. 신앙의 회복은 주일성수를 지키는 일을 통해서 시간의 우선 순위를 회복할 때 가능합니다. 주일 성수가 흔들리면 삶의 우선 순위가 흔들입니다. 삶의 가치가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것을 위해 살아가기 깨문에 허망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면 주일성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일에는 슬퍼하고 울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서 8장 10절입니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주일에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신자가 어디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일에 예배를 통하여 생수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열납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주일에 먹고 마시고 나누고 베푸는 것을 통해서 잔치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간혹 어떤 분이 교회와서 식사를 드시면서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 와서 먹으면 뭐든지 다 맛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주방에 일하시는 분들이 맛있게 준비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다가 또 다른 분명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식사의 맛은 어디에서 먹는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교회에서 먹기 때문에 맛있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식사는 누구와 먹는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성도와 함께 먹기 때문에 맛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누구 앞에서 먹는 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곳에서도 누릴 수 없는 영혼의 기쁨, 식탁의 기쁨, 나눔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힘이 됩니다.
느헤미야서 8장 11-12절입니다.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히 가서 근심하지 말라 하니.” 그렇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릴 때는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근심으로 가득찬 표정을 지어서는 안됩니다. 영적 세계는 기뻐하면 힘이 나고 근심하면 힘이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근심하는 표정을 지어서는 안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뻐하면 아토피 피부가 낫는다고 합니다. 기뻐하면 면역체계가 회복됩니다. 기뻐하면 관계가 회복됩니다. 기뻐하면 머리가 좋아집니다. 기뻐하면 힘이 생깁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 면전에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와서 아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무른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를 끼치는 말은 서로를 세워 주는 말입니다. 더러운 말은 교회 안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더러운 말을 하게 되면 성령이 근심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는 큰 소리가 나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본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주일날 우리는 교회의 분위기를 최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표현하면 성령이 근심하게 되고 주의 종이 근심하게 되고 성도들의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언어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분위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기쁨의 분위기, 업(up0이 되는 분위기, 믿음의 분위기, 생기의 분위기, 연합의 분위기로 만들어 가는 일에 우리 모두가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어떤 분은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나마지 시간은 자신의 준비와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3절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주일에는 오락를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 신앙에 도움이 되는 영화는 몰라도 세상적인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주일에는 정치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자제해야 합니다. 신앙의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깨달은 부분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대화를 통해서 영혼이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물질 사용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느헤미야 10장 39절입니다.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주일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을 버리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는 것이 물질로 교회의 창고를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나올 때 하나님을 은혜에 감사하여 십일조와 감사헌금, 주일헌금, 절기헌금 등을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 , 예배를 위하여 필요한 물질,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필요한 물질, 주의 종들의 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물질 등,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드리는 일에 부담을 느끼거나 결코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가 사용되고 있다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한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같이 모여서 거룩한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함께 모이는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맏음으로 반드시 반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의 결단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가 회복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주일성수를 통해서 영적인 가치의 회복과 더불어 우리 삶의 전반적인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이제 물질 사용의 우선순위가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중심으로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아름답게 사용되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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