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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로 가든지(여호수아 1:5-9),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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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경험, 지, 감정은 우리의 추억 속에서 장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를 불렸던 곳, 울었던 곳, 위험을 느꼈던 곳, 자신을 얻었던 곳,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곳과 위안을 받았던 곳, 이 모든 곳을 우리는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늘 어떤 곳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에 몸 담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설 곳은 어디입니까?

 

다음 주부터는 일원동에 있는 예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배 처소를 옮기는 것은 엄청난 지각변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도 지지난 주에 일원동으로 이사를 갈 때 심련하고 깊은 외로움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할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여러 가지로 착잡했을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의 사람들은 자신과 갈렙을 제외하고는 광어에서 다 죽었다는 아픔이 소록소록 생각났을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 모세 조차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커다란 부담감을 얻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종의 가나안 신드롬에 걸려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출애굽 2세대들은 그 땅의 지형이나 전략에 무지했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해도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일반적인 전술 전력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려고 했을 때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대들을 이끌고 나갈 자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구 세대와 신세대의 괴리가 세대 엄청 컸을 것입니다. 서로 간에 대화가 잘되지 않고 답답한 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너무 잘 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비교의식에 서 적잖은 괴로움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를 통해 상당한 도움을 받았을텐데.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누가 없기 때문에 상당히 힘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5). 9절에도 보면 "내가 어디로 기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생애를 책임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책임지 주신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애를 책임져 주신다면 어떠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신자들에게 이니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갑자기 무의미해지고, 은과 금과 같은 것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나는 동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자 가나안 땅을 모두 주시겠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 말을 재앙의 말로 여겼습니다(출 33: 3,4).

 

하나님께서 분명히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고 싶으셨지만 그럴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던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거나 결코 놀라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던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마음이 왠지 모르게 든든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축당하거나 일이 꼬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우리는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어디로 가던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함께 해주신다면 계속되는 고통이 반드시 축복의 기회가 될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시험에 드는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다 하더라도 두려움의 영이 임하면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자격지심의 법칙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사람은 성공이나 승리와 연관되며, 나쁜 사람은 실패와 패배와 연관된다고 결론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나려면 그럴 만한 자격 이 있어야 하며 우리가 나쁘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배웁니다.

 

다음주부터 우리는 일원동에 있는 예람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어디를 가던지 너와 함께 해주시겠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십시오. 여호수아의 경우에도 새로운 땅을 정복해야 핡 시점에서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세 번씩이나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계속해서 받으면서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담대한 심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로 인해 두려워 하거나 놀라게 되면 우리의 판단이 흐려지고 일이 이상하게 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의 생애를 책임져 주실까요?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의 원칙에 순종하는 사람의 생애를 하나님께서는 책임지주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비추어서 전개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에서 상황에 따라서 자꾸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만을 자신의 신앙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우리의 삶의 척도로 삼아이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고 기도는 하는데 결과가 그렇게 좋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와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일종의 기류를 형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기의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가서 구름층을 형성하고 그것을 기류를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도 육신에 속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시간도 걸리게 마련입니다. 아직도 육신에 속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많이 벗겨져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하나씩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 가장 어려웠던 일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적인 유익을 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갈등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어려움입니다.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하는 어려움입니다. 원하는 선을 행체 아니하고 원치 않는 악만 행함으로 오는 갈등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는 어려움입니다. 성품이 잘 변화되지 않아서 어렵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 지켜 행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 니다.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지만 축복은 말씀을 얼마나 생활화하느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면 우리의 가는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어디를 가던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 라"(잠 3:6). 우리가 생활 가운데 얼마만큼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으로 관련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랑 기운데 나를 아시고 나의 유익을 위해 나를 지켜 보시고 계십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 대한 최악의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알고 계시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나 자신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 대해 환멸을 느끼도록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내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결심을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큰 위안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는 길을 형통케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형통케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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