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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다른 특별한 관계(데살로니가전서 2:17-20),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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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남다른 관계에 있음을 역력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잠시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잠시 떠났다'는 원문에 보면 '고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을 고아에 비유함으로써 얼마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런 것을 언급할까요? 바울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갑작스럽게 떠났고 돌아오지 않는 것을 두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탄로가 날까봐 두려워서 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얼마나 보고 싶은 지 당장 달려라도 가고 싶어합니다.

 

그들을 떠나서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난 멀리 있어도 널 볼 수 있다는 글이 생각납니다. 바울은 한순간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잊어버리거나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려고 계획을 두 번이나 세웠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베뢰아에서(17:10), 한 번은 아덴에서였습니다(17:16)사탄이 바울 일행으로 하여금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토로합니다. 그렇게 된 것은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후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것으로 바울이 본 것 같습니다.

 

사탄이 막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막고, 때로는 육신의 병이나 사고로서 막기도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가 힘있게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경우에 막히는 것을 사탄의 방해라고 여긴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66절에 보면 성령이 바울 일행으로 하여금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우리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기 때문에 결단코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0절 앞에 '왜냐하면' 이란 단어가 원문에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 일행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섬겨왔던 교회를 마지막날 주님 앞에 내세울 수 자랑으로 삼는 자세는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예람교회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확신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람교회 성도들이 목회자들의 영광이요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섬김에 대한 주님의 칭찬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받기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 자랑의 면류관은 돈이나 성공이나 명예가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날 믿음으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은 순교자들을 위한 생명의 연류관(2:10),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한 자들에게 주시는 기쁨의 면류관(살전 2:19), 사명을 잘 감당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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