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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서 강해 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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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1 1-12)

오늘부터 전도서 강해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도서 1 1절부터 11절까지 말씀입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서를 읽고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빠집니다. ! 정말 모든 게 헛되구나. 그러면서 때때로 자신의 삶이 맥이 빠지고, 인생의 어떤 그 허탈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센티멘털리즘에 빠지는 그런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도서의 초점이 이게 아닙니다. 전도서는 허무주의에 빠지라고 주신 게 아닙니다.

 

전도서는 두 관점이 있는데 하나는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쾌락주의로 흐릅니다. 어차피 인생은 이런 거니까 즐기면서 한 번 살아보자.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허무주의 아니면 쾌락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이와는 다르게 새로운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인생이 허무하고 헛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바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쾌락을 다 누려보았지만 허무하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즉 인생의 허무하고 많은 쾌락을 다 누려 보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전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  1절에서 12절까지는 나는 헛되도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12-6:12까지는 헛되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7:1~12: 14까지는 헛된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구체적인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결론은 전도서 12:14 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두번째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

 

세번째 질문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번에 전도서 강해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지혜를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삶의 의욕을 꺾는 책이 아닙니다. 그렇게 결론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는 끝까지 읽어보셔야 됩니다. 부분부분 읽어보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도서의 결론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도서 1장 1절입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은 자신의 특권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특권을 시사합니다. 전도서의 저자인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그는 누구일까요? 그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최고의 특권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의 가문도 그러했고, 성장 배경도 그러했고, 어쨌든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왕”. 솔로몬의 지위는 막강했습니다. 그는 명예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부를 얻은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떵떵거리면서 살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부도, 명예도, 마음껏 손에 쥐고 흔들었던, 모든 것을 다 누려 보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말이 전도자의 말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라고 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최고의 여예를 누리며 살았던 지난 날의 인생을 돌아보니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인지 후대 사람들에게 꼭 나누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도자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도하는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원문의 뜻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삶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고 그 내린 결론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인생의 결론을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되고,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과 같이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려본 사람이 내린 결론이 무엇일까요? 본문 2절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젊은이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면 그래도 좋으니 한번 누려라도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누려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누리고 있는 사람을 바라볼 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누려본 사람들이 내린 결론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석양이 기울어지는 그때에, 인생을 다 살아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입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이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나라들로서 그 모든 유익과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의 공허함과 허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960대부터 잘 살아보자고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잘 살기만 하면 행복이 보장된 것처럼 아침에 눈만 뜨면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동네 스피커에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전쟁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전도사의 저자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고백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인생이 왜 헛된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다 지나가고 마는 것이로구나. 한 번 있다가 다 없어지는 것이구나. 3절에 보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반문합니다. 4-7절에서 이렇게 토로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니라.”

 

도대체 우리에게 남는 게 무엇이냐?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나요?”성경은 인생을 장사하는 것에 많이 비유합니다. 도대체 영원한 게 무엇이냐? 땅은 그대로 있고 해는 떴다가 지고 바람은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불고, 돌이키고, 강물은 흘러 흘러 연하여 흐르고. 다 가고, 없어지고, 도대체 영원한 게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3:11).

 

쉽게 말씀드리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에게는 미련' 이라는 것이 항상 있습니다. 좀 더 붙들고 싶고, 좀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은 헤어지는 연습을 잘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고. 끊임없는 헤어짐의 연습을 한다고 어떤 시인은 말했습니다.

 

도대체 영원한 게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 영원합니다. 영생은 영원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사라지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서 일점일획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지혜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 최대의 관건은 '누가 영원한 것을 붙들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488, “이 몸의 소망 무언가에 나오는1, 3절 가사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 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세상에 믿든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어집니다. 오직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우리 주 예수뿐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헛됩니다. “헛되다는 원문은 추운 겨울에 입김을 말합니다. 입김처럼 우리의 영광도 우리의 근심도 다 사라집니다.'' 한번 하면 그냥 사라지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헛되다는 두번째 의미는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잡히지 않고 도망을 가는 겁니다. 잡힐 듯 하지만 결국은 잡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손을 불끈 쥐고 태어납니다. 어려서부터 뭔가를 붙잡으려고 하는 욕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손을 놀고 갑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두번째 질문은 오래 남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본문 8절입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수고하는데, 도대체, 인생이. 인생의 의미가 뭐냐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도대체 만족이 없다 하는 겁니다. 그저 피곤할 뿐입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다 말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피곤한 가운데 살아갑니까? 아마 새벽 기도 나오시는 분들은 더 그것을 실감할 겁니다.  우리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는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사람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맙니다. 주부가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인생의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할 때에 모든 게 짜증스러워집니다. 다 귀찮아집니다. 도대체 인생의 의미는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이것은 엄청난 메세지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의미. 우리에게 어떤 삶의 길을,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겁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제일 큰 보화가 뭔가 하면 '삶의 이유를 깨닫는 것입니다. 전에는 몰랐습니다. 다 남들처럼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럭저럭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부터 내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주님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나오신 성도님들이여, 다른 어떤 것보다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삶의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불행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대체 이 세상에서 무엇이 새로운가. 새로운 게 과연 있는가. 쉽게 권태와 싫증과 짜증에 사로잡혀 있는데, 이 세상에서 정말로 새로운 게 있는가?

 

본문 9, 10절 말씀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다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해 아래는 새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과거에 있던 것이 새롭게, 또 이렇게 대두되는 것입니다.

 

우리 여자분들 치마도 그렇죠. 어떤 때는 긴 거 입었다가, 어떤 때는 짧은 것 입었다가. 어떤 때는 또 긴 것 입었다가. 또 짧은 것 입었다가. 자꾸. 이게 수시로 바뀌어집니다. 유행도 바뀌어집니다. 스타일도 바뀌어집니다. 그러니까. 뭐 새로운 거 발견하려고, 신상품. 기획상품 만들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합니까? 요즘에는 히트 상품이 2개월도 못 버립니다. 그만큼 지금. 이 시대가 속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의식도. 모든 것도 이렇게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그저 스타일만 바뀔 뿐이지. 내용은 그대로 있습니다. 스타일만 조금 바뀐 것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는 제도가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행도. 관심도, 욕구도. 이전에 다 있었던 겁니다. 별로 새로운 게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자꾸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자꾸 권태에 빠지고 싫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이나 보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1:1-11절까지는 하나님이 없는 삶은 헛된 삶이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다 누린 사람이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 그 의미를 깨닫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삶 그자체로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마음이 차지 않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지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전도서 강해를 통해서 꼭 깨닫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전도서를 통해서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하는 이 메시지가 실감이 납니다.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더 이상 헛되게 살아가는 않고 의미있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약해서 이전에 옛 사람의 모습에 굴복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서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승리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는 이 세상을 부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포기의 꽃을 보면서도 의미를 부여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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