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한 보람이 있는가?(전도서 2:18~26), 김덕선 목사
전도서 2장 18절 말씀부터 26절은 '인생의 수고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18절부터 22절은 수고한 보람이 도대체 무엇인가?, 23절은 수고의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24-26절은 수고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한 교회에서 매일 이렇게 새벽에 나오시는 분들은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전도서 저자는 우리에게 열심히 수고한 보람이 무엇인가? 묻고 있습니다.
1. 수고한 보람이 있는가?
본문 18절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전도서 저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한 모든 수고에 대해서 허탈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렇게 수고를 했지마는, 내 수고한 결과를 누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겁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솔로몬 당시에는 통일왕국시대입니다. 국토도 확장되고 많은 부를 얻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또한 두로에서, 이웃의 많은 나라들이 이 솔로몬의 전성시대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넘어와서, 나라는 둘로 로 분열되고 결국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수고해 왔던 것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까? 전도서 저자는 그렇기 않기 때문에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그 사람이 지헤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혓되도다.”
오늘날, 어떤 단체에서는 자식들에게 유산 물려주지 않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고 다른 물질적인 유산은 가능한 물려주지 않는 운동입니다. 물론 부모는 집에 있을 때 자녀들을 뒷바라지하고 그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한계선이 있습니다. 부모가 언제까지 책임지는가 하면 대학 보낼 때까지입니다. 일단 대학 들어가고 나면, 모든 것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이후로 부터는 부모가 책임을 안 집니다. 이제는 너의 길은 네가 알아서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 대한 사랑에 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을 고생을 안 시키려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때문에, 부모가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우리가 나무랄 게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면. 그것이 대부분 유지가 안되고. 자식도 망하고, 부모도 그것 때문에 허탈함에 빠지게 되는 것을 저는 종종 보게 됩니다. 부모가 수십년 동안에 쌓아온 기업을 쉽게 물려 받은 자녀들이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은 접어야 합니다.
미국에 대실업가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한참 미국에서 날렸던 이 부호들이. 25년이후에 서로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결과를 누가 종합을 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살하였습니다. 5년이 지나고 보니, 그 부모의 재산이 유지된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유산은 자녀들에게 별로 유익이 안됩니다. 사람은 수고하고 고생해야 무엇이 중요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을 보면 자녀들을 위해서 안 먹고, 안 쓰고, 재산을 모았습니다. 저분은 이제 남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사용할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물어보면 손자들을 위해서 준비한다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서게 될 텐데! 너는 자녀들에게 많은 유산을 물려준 것 때문에 칭찬받을까요? 천국에 가서는 자녀, 손자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의 물질과 시간을 누구를 위해서 썼는가?? 거기에 따라서 상급이 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동안에, 주신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쓸 것인가?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결국 자녀들을 위한 겁니다. 우리는 돈을 제대로 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왜 보람이 없는 줄 아십니까? 오늘날 우리 한국의 부모들이 너자녀를 끔찍이 사랑하다가 언젠가는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애쓰고 수고한 수고한 보람이 무엇입니까? 전도서 저자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를 볼 때 자녀들에게 이어지지도 않을 뿐 더러 모든 게 그렇게 끝난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고한 것을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저는 장례식을 집례할 때마다 한 가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저분은 돈을 좀더 쓰고 돌아가시지. 왜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가시는지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런 상급이 없는데.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때 자녀도 부모도 올바른 재물관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전도사 저자처럼. 수고한 보람도 없이 나중에는 실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40대, 50대 부모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자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0, 80대 된 부모님들 얘기를 가만히 들어 보면 그분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식도 다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자식이 필요 없겠습니까? 자녀들 결혼시키고 혼자 쓸쓸한 시간을 보낼 때 자녀들이 바쁘다고 찾아오지 않을 때 속이 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연세드신 분들이 내린 결론이 뭔 지 아십니까? 자신이 쓸 것을 챙겨 놓아야지 다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부모가 이것도 저것도 안해 준다고 원망하지 말고 내가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야. 며느리도, 아들도. 한번이나 더 찾아오지. 돈이 없으면 안 찾아온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부모와 자식간에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수고한 결과가 실망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수고하면서 어떤 것을 겪고 계십니까?
본문 23절입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일평생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떠한 수고의 과정의 과정을 거쳐왔습니까? 나이가 드신 분들은 보리 고개를 거쳐야 하고 전쟁 통에 얼마나 힘든 피난길에 올랐습니까? 당시에는 의료헤택을 받지 못하여 죽은 자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시집, 장가보낸다고 빚을 지고 갚는다고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이 모든 과정이 다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은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속이 얼마나 썩습니까?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이 없는 게 상팔자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속고 삽니다. 우리가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말도 잘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면 그때부터 속상하고 힘듭니다. 어떤 분은 제게 ‘저놈, 꼴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 애를 보면. 남편도 막 미워집니다. 물론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갓 태어나서 품에 안을 때에 행복한 순간을 가끔씩 기억하며 살면 어떨까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슬픔의 연속입니다. 이것이 수고의 과정입니다.
3.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수고하셨습니까?
우리의 수고가 그렇게 헛되고. 우리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수고해야 하나요? 본문 24절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된 축복은 수고의 목적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어떤 목적입니까?? 하나님 안에서의 수고는 보람 있는 수고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직장에서 수고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이렇게 슬픔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는 그것이 선물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우리. 신혼부부들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신랑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신랑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선물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선택했다가 처음에는 좋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형편이 없더란 말이죠. 그럴 때에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 막 짜증이 나고 후회가 되는 겁니다. 그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주례 때 신혼부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을 하면 삼일 동안에는 그저 정신없이 살고. 삼 주 동안은 재미있게 살고. 또한 삼 개월 동안은 뭐가 뭔 지 모르고 살고, 삼십 년 동안은 연구하면서 살고. 그것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 손에서 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수고는 보람 있는 수고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귀한 일이지만 일상생활에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가 아이들이 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데리러 갈 때도.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도 지혜도 믿음도 주신 것 감사해야 합니다. 수고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모든 것이 어둡게 보였고 헛되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헛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수고한 보람이 없었습니다. 수고하는 과정이 왜 그렇게 힘들고 짜증을 냈는지 모릅니다.
전도서 저자와 같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랑이요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마음이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공부하는 자세, 생활하는 태도, 시간과 재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거리에 피어 있는 꽃 한송이도, 하늘을 나는 새도 이상하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내 주변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가지 변한 것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나무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올 때 바라보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이 다 필요가 없고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물 한 컵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맛있는 식사로 섬겨주는 아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하나님이 주신 자녀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지, 교회에 보내주신 성도들을 바라보면서도, 얼마나 귀한 지 모른 것이 감사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보람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심령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즐거운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제일 큰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마음의 기쁨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행복입니다.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기쁜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다 보면 필요한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에 필요한 것. 오래 오래 계속될 수 있는 것. 상황이나 환경에 변화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아 보여도 수고의 과정이 슬퍼 보여도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보람 있게 수고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수고의 보람이 무엇인지. 수고의 과정이 무엇인지. 수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시간도, 나의 물질도 나의 건강도. 나의 자녀들도. 내가 행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힘있게 수고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용기와 힘을 더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건강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이른 새벽에 나와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주의 귀한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피곤하지 않도록 붙잡아주시고. 사랑의 열매가 가득 맺게 하여 주시고, 생활에 넘치는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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